학교이야기

오만과 편견

글. 성대훈 선생님(잠실고등학교)

소규모 테마학습 여행지로 제주도가 결정되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한라산 등반이었다. 몇 해 전 우연한 기회에 백록담에 오른 뒤로, 등산을 그다지 즐기지 않음에도 몇 차례나 다시 찾을 정도로 매료된 그곳을 우리 반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우려 속에 시작된 등반이었다.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거나 피시방을 맴돌기 일쑤인 요즘 아이들이 과연 해발 1,950m에 달하는 한라산에 오를 수 있을까? 하지만 기우일 뿐이었다. 이미 건장한 청년들인 아이들은 그간의 부족한 운동량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갔다. 결국 엉덩이가 유독 무거운 몇몇과 제일 뒷줄에 서고 말았다. 선생님만 믿으라며 호기롭게 나섰지만, 현실은 ‘노구’를 이끌고 아이들 손에 의지해 간신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가본 길이고, 등산이야 아이들보다 한 수 위라 생각했던 내 오만이 부끄러워졌다.

어렵사리 하산을 마친 뒤 지친 몸을 쉴 수 있게 됐지만, 정작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 내가 잘못된 편견을 가졌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교사이기에 더 많이 알고 절대 실수하지 않으며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 준비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업, 어른인 교사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알려주는 교실.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화를 냈던 일이나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며 반성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던 일 모두 아이들을 관계의 동등한 ‘상대’가 아닌 ‘대상’으로 간주해서 생긴 갈등이었다. ‘나는 틀리지 않는다. 내가 옳다’라는 전제를 깔고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이해보다는 강요, 설득보다는 훈계가 앞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반성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도 생겼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고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하지 않았던가? 교실은 그런 일방적인 곳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끌고 당기며 상호발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때로는 아이들로부터 내가 배울 수도 있다.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미래와 꿈을 가지고 성장할 아름다운 아이들인지….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를 뒤늦게 깨닫고 나니 아이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피곤함에 정신없이 버스 안에서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돌아보곤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낯선 친구들과 새롭게 일 년을 보내게 되어 많이 긴장될 거다. 말 건네기 불편한 친구도 있고, 모든 태도가 영 거슬리는 친구도 있을 거다. 이런 친구들과 맞춰가야 하니 힘들다고 생각되겠지만, 지나고 보면 다들 그리운 친구로 남을 거다. 정을 붙여보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선생님만 믿고 따르면 다 잘해낼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3월의 첫 시간,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근엄한 표정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다짐한 말이었다. 줄곧 중학교에서 근무하다 올해 처음으로 고등학교에 발령이 났고, 낯설고 두렵기는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두려움을 감춘 채 센 척하기보다는 “선생님도 고등학교가 처음이야. 무섭고 낯설지만 우리 함께 잘해보자”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앞장서서 이끌 대상이 아닌, 함께할 상대로 생각했다면 한 해가 더욱 멋지지 않았을까 싶다.

2017년, 나와 함께 해준 친구들 덕분에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곧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의 오만과 편견은 안녕! 이번에는 센 척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새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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