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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시대, 학교교육의 길을 묻다

위기는 인공지능에서 오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를 활용한 사례들을 접하며 우리는 기술과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체감하고 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몰고 올 변화의 물결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저 불안에 떨고 있을 것인지, 침착하게 대응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글. 김재인 (철학박사,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저자)

인공지능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의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까지도 대신하게 된다는 예측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되는 것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거나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당분간은 창조적인 일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창조성은 실험의 위험성을 이겨내는 개인적, 사회적 용기와 그것이 실천될 수 있는 자유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막연히 실험해보라고 권하는 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셈이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제시해야 한다. 나는 예술가의 삶에서 단서를 찾는다. 예술가의 작업 방식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예술가는 남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새롭고 미적인 것을 만들고 싶어 한다. 아류나 표절 혐의는 스스로 예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존의 것들을 조사해야 한다. 예술가의 작업은 완전히 새로운 필요에서 지식을 얻도록 추동하며, 학습할 지식의 성격도 바꾼다. 전통적으로 고수하던 교습 내용이 전혀 새로운 맥락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재편된다. 모두 조사한 다음에 예술가는 직접 실행해봐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실행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습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지식과 기능은 작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통합된다.

모두가 예술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단지 창조 행위로서의 창작이 학습의 핵심 활동으로 여겨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창조성은 이런 식으로만 길러질 수 있다. 각 개인이 창작자 또는 메이커가 되어 보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봐야 한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많을수록 좋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남들이 여태껏 하지 않았던 것을 해내는 걸 학습의 최우선 목표와 최고 방책으로 삼자는 것이다. 내 제안은 교육 과정에서 학습자에게 그런 과제를 던지고 도와주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도움이 필수적이겠지만, 도움을 주는 방식은 더 정밀해져서 학습자 맞춤형이 되어야 한다. 교사 자신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개인에게도 모둠에게도 ‘너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걸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부여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반복해서 해결하다 보면 사람이 바뀌게 마련이다. 성장하게 되고, 자기 보정이 일어난다. 학습과 교육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세분해서 가르쳤던 교육 내용과 교육 과정은 해체되어 재편되어야만 한다.

앞으로 어떤 직종이 주목받게 될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삶을 살아가면서 한 사람이 여러 직종을 거쳐 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되리라 전망된다. 그때마다 매번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한다. 아니, 이제 학습은 삶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새로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하고, 새로운 상황에 혼자서도 대처하는 법을 학습해야 한다. 한마디로 창조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틀을 깨야 한다

나는 학교 현장이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내 아이들이 놓인 학습 환경을 봐도 얼마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20세기의 전형적 방식에서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1인의 교사가 다수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수긍이 가지만, 다수의 교사가 1인의 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나의 제안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실행하기 어렵다는 반론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나의 제안은 이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훨씬 더 현실적이다. 교육이 형식적 행위가 아닐진대, 실효적 결과를 낳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근본에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과거 교육 방식이 근본적 한계를 만났다는 점을 이 땅의 모든 교육자에게 확인시키고 싶다.

나는 앞에서 교사 자신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인성을 키워주고 학생을 보살피는 교사의 임무는 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과 기능을 배양한다는 또 다른 임무와 관련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재교육을 바라는 교사가 많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교사의 재교육 프로그램도 사회적인 수준에서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 교사 자신도 지속해서 학습해야 한다는 새 시대의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새로 교사가 되는 젊은 교사보다 오래 교직에 종사한 숙련된 교사들에게 더 부담스러운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학습자 맞춤형 교육에서는 학생 한 명이 여러 명의 교사를 필요로 할 것이다. 나는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오히려 단서를 본다. 교사 한 명당 학생 수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학생이 여러 교사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는 체계를 점진적으로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을 중심으로 협업 체제를 구축해야 하리라.

학생 평가 시스템도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 기존의 평가 시스템이 대학입시에 종속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리 새로운 교육 내용과 방안이 제시되어도 이내 입시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곤 했던 것이다. 한국 내에서 벌어지는 상대평가로서의 대학입시는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절대평가의 압력을 배겨낼 수 없다. 이제는 입시라는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 새 시대에 맞는 개개인의 능력 배양 방안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창조적 인간 기르기라는 구체적 목표가 실현될 여지가 생긴다. 평가 시스템이 바뀌는 것은 입시 같은 외부 요인에 좌우되지 않으면서 실효적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필수조건이기도 하지만, 학습자 개인 수준에서건 우리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건 사활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기성세대는 대학을 포함한 학교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창조 행위로서의 창작이 학습의 핵심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학교의 시간과 공간이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위기는 인공지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타성과 고착이 바로 위기의 본질이다. 한국 사회는 혁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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