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역량, 세상을 살아가는 힘

역량이란 무엇인가?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역량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지난해 초등학교에 이어 올해부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키워드는 ‘역량’이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육성과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꿈과 끼를 키우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렇다면 역량이란 과연 무엇인가? 교육전문가와 교사가 모여 역량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친 좌담회 현장을 담았다.

글. 변춘희(시민기자단) / 사진. 이승준

역량의 개념과 정의

변춘희 지난해 초등학교 1, 2학년에 이어 올해부터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됩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는데요. 과연 ‘역량’이란 무엇인지, 역량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은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지금의 평가시스템은 학생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지, 학교와 사회는 학생들이 역량을 발현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세 분의 전문가를 모시고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찬승 저는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공익 단체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담론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역량과 관련해 칼럼도 쓰고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현광일 <발달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고, 새로운 학교 네트워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고츠키와 관련해 역량과 발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한희정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학교현장에서 역량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찬승 2015 개정 교육과정은 6가지 핵심역량을 총론에 명시하고 교과 교육과정에 연계시켜 가르치도록 하고 있어요. 이런 변화는 21세기 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역량연구 연합체의 역량교육 운동과 OECD의 핵심역량 정의와 선정에 관한 DeSeCo 연구 및 세계적인 역량교육 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세계적으로도 초중등 교육에서의 역량교육에 대한 연구와 실천은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량에 대한 정의도 직업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훈련된 수행능력과 기능이라는 좁은 의미부터 지식, 이해, 기능, 능력과 태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까지 다양해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역량 함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량에 대한 정의의 ‘모호함’을 극복해야 해요. 역량의 정의가 모호하면 이로부터 핵심 성취목표를 도출하고 이와 연계해 평가 및 수행 과제를 설계하는 것이 어렵죠. 핵심역량을 제대로 정의, 도출하는 것이 역량교육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일입니다.

현광일 저도 역량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용어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 얘기했어요. 제가 2015년 <경쟁을 넘어 발달 교육으로>를 펴낼 때만 해도 역량이라는 말을 안 쓰고 아이들의 성장발달을 얘기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썼는데, 최근 자유학기제를 보니 역량이라는 말이 이미 학교에 다 퍼졌다고 느꼈어요. 역량은 지식 위주 주입식 교육에 대한 하나의 비판적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확 퍼졌어요. 학교현장에서 빠르게 역량이 퍼지게 된 것도 주입식 교육과는 다르다고 이해했기 때문이죠.

한희정 역량이라는 개념이 인간을 기능적이고 도구적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게 당연하지만, 한국 교육의 현실 때문에 참교육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썼어요. 2001년 참교육실천대회에서 ‘학력을 넘어 역량으로’라는 발제에서 OECD에서 다룬 역량이라는 개념을 지식으로는 알지만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는 우리 교육에 대한 대안 담론으로 처음 말했어요. 이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역량 중심의 교육에 대한 연구와 방안을 내놓아 읽었지만, 내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의 지식편식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역량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죠. 7차 교육과정부터 과정 중심 평가를 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지식 중심 평가를 하고, 서열을 가리는 평가가 아닌 성장 중심의 평가를 하라고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모호한 상황에서 역량이라는 개념을 갖다 쓰면서 대안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죠.

이찬승 역량에 대한 철학적 비판은 연구 개발자나 교사들도 다 받아들일 거예요. 지식교육과 역량교육의 관계에 대한 불명확한 규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더라도 무기력한 지식에 활력을 넣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역량의 개념을 동원했다면, 한국 학교교육의 목표를 역량 함양 대신 지식의 깊은 이해와 활용이라고 했으면 반발이 없었을 거예요.
수십 년 동안 지식의 활용은 없고 습득만 했어요. 그래서 역량을 가져온 건 좋아요. 지식과 역량 간의 관계를 가장 잘 설정한 국가로 일본을 들 수 있는데, 일본은 10년 만에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면서 초중고 교육이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학력을 ‘자질·능력의 3개 축’으로 재정의했어요. 살아가며 일할 때 필요한 ‘지식 및 기능’의 습득, 미지의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의 육성, 배움을 삶에 활용하려는 ‘학습의 힘·인간성’의 함양이에요.
역량교육이 능숙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확인한 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은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에요. 한국 학교교육에서의 역량은 능숙한 수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고, 기본적인 것조차 습득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학생이 많은데도 진도를 나가요. 특정 주제에 관한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것을 역량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역량 함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량에 대한 정의의 ‘모호함’을 극복해야 해요. 정의가 모호하면 핵심 성취목표를 도출하고 이와 연계해 평가 및 수행 과제를 설계하는 것이 어렵죠. 핵심역량을 제대로 정의, 도출하는 것이 역량교육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일입니다. -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삶에 힘이 되는 교육

변춘희 역량의 정의를 합의하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하셨는데요.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면 내가 생활하면서 어디에서 써먹을 수 있을까 싶은데 수학공부의 목표를 역량 함양이라고 하면 실생활에서 수학 계산법은 쓰지 않더라도 수학을 통해 얻어지는 생각하는 방식,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같은 논리적 사고력을 배워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쌓는 교육을 할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쓸모없는 학문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겠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드는 거죠.

한희정 추상적,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건 수학교육의 본질이죠. 그게 역량으로 설명되는 건 아니에요. 작년에 6학년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분수의 나눗셈을 할 때 왜 역수를 곱하는지 이해를 못하면서도 외워서 문제를 풀어요. 교과서에는 종이를 잘라가면서 개념을 설명하고 있거든요. 수학교육을 본질적으로 고민하시는 분들은 개념부터 이해하는 교육을 하고 있어요. 역량의 개념 없이도 현장에서는 수학교육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이미 하고 있었죠.

변춘희 올해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가 바뀌었잖아요. 국어 교과에 ‘한 학기 한 권 책 읽기’라는 새로운 단원이 있던데 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책으로 수업을 한다는 점에서 아주 새롭다고 생각했어요.

한희정 그것 또한 국어교육의 본질이죠. 현장에서 역량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전부터 참교육을 실천하던 선생님들이 교육과정 재구성 등을 통해서 시도했던 걸 2015 교육과정에서 차용한 거죠. 2018년이 아니라 2017년부터 2015 교육과정이 시행됐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어요. 교육과정을 개발하려면 교육과정 총론을 개발하는 데 2~3년이 걸리고, 각론을 개발하는 데 2~3년,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 2~3년이 걸려요. 2007 교육과정이 2011년부터 적용될 예정으로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었는데 현장 적용을 하기도 전에 그 당시에 정부가 2009 교육과정으로 개정을 했어요. 각론 개발과 교과서를 개발할 시간이 없으니까 교과서는 2007 교육과정으로 개발한 것을 쓰라고 하고 2013년부터 새로 개발한 교과서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바꾸는 시기를 확 줄였어요. 2015년 가을에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했는데, 2017년부터 적용한다고 하면 1년 반 만에 각론 쓰고 교과서 썼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니까 2018년부터 적용한다고 쓰고 아래에 조그맣게 초등학교 1, 2학년은 2017년부터 적용한다고 쓴 거예요.
기존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가 없다는 게 우리나라 교육과정 개발의 큰 문제예요. 핀란드와 같이 교육 선진국으로 꼽히는 곳은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바꾸니까 1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공부했을 때 결과가 어떤지, 어떤 교육적 성취가 있는지 평가할 수 있어요. 현장의 교사들은 교과서를 재구성해서 수업을 제대로 해보려고 하면 바뀌고, 해보려고 하면 바뀌는 게 부담이죠. 어떤 학생들은 1학년이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세 가지 교육과정으로 배운 적도 있어요.

현광일 역량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자면 교사가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서술로 기술할 때 담론적 자원으로서 유용한 부분이 있고, 자유학기제 같은 것에 수용될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새로운 교육 담론이 나왔을 때 아무런 견제도 없이 나가는 건 문제예요.

한희정 한동안 이런 견제를 펼칠 수 없었어요. 현장의 교사들이 반대했고, 교육과정 부장들은 학교에서 연수 한 번 듣지 못하고, 교사들이 동의한 적도 없는데 역량으로 교육과정을 짜야 하는 현실이에요.

이찬승 학교교육의 최종 결과를 핵심역량의 함양으로 설정할 경우 큰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커요. 지식기반 사회에서 지식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데 이런 시도가 자칫 지식교육 자체를 소홀히 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 이런 불을 끄는 방법은 역량을 가르칠 수 있도록 간소화해야 해요. 심미적 역량이라는 걸 어떻게 가르치고 접목할지 알 수가 없어요. 일본처럼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이 모든 교과에 가르치는 방법과 평가방법에 하나하나 다 들어가야죠. 과목별로 예를 들어 수학에서 사고력이 뭔지, 판단력이 뭔지, 표현력이 뭔지 다 정의를 해요. 일본의 교사들은 역량의 정의와 어떻게 활용할지를 아주 많은 용례와 사례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일본에서는 역량이라는 말 대신 살아가는 힘이라고 표현하고, 이 살아가는 힘을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이라고 한 거죠. 한국도 인간상 4개, 인재상 6개를 가지고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 평가와 연결해야 해요. 그런데 연계시킬 수가 없는 거죠. 역량을 간소화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놓으면 역량에 관련해서 교사들이 활용할 거예요.

변춘희 각자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현광일 선생님마다 듣고 있는 게 달라서 학교에서 이 역량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합의가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역량이 빨리 정의되고 정리되면 좋겠어요.
측정 가능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하는데 지금 모든 교육의 역량을 개인을 통해서 측정하면 또 서열이 생겨요. 심미적 역량이라는 것은 학교가 가진 문화적 능력이에요. 나아가 마을 공동체와 학생들이 접하는 많은 상황 속에서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거죠. 그 안에서 학생들이 커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개인에게서 역량을 측정하려고 할 것이 아닌 거예요. 학교문화라는 차원으로 학교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능력이죠. 학생들의 발달단계가 서로 마주 보는 관계, 함께 있는 관계, 나 혼자 있는 영역이 있어서 함께 있는 것은 함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지표를 만들어야지 개인에게서 측정할 수는 없어요. 전 사회가 능력주의에 길들어 있다고 봐요. 역량 중에 측정 가능한 것이 있을 수 있어요. 그건 집단으로 보는 것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거죠. 비고츠키가 얘기한 문화발달이라든지 학습, 협력문화의 중요성 같은 걸 같이 봐야 하는데 교육과정이라고 하면 아이들 개개인의 평가에만 몰입하는 논의 자체가 허구라고 생각해요. 무의식적으로 부모들도 이런 프레임에 매몰되어 있어요. 내가 먼저 알아서 아이들에게 정보를 주면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변춘희 선생님께서 얘기하는 학부모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지금 교육이 문제라고도 생각하기에 변화와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면 궁금해하는 면도 크거든요. 자신이 답답해하고 있는 부분과 견주어보고 싶은 욕구이기도 해요.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해 이론을 바탕으로 잘 말할 수 없고 의견을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할 뿐이지 관심은 높아요.

한희정 과정 중심의 교육을 20년 넘게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아이가 몇 점인가를 궁금해하는 학부모가 많아요. 역량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학부모 연수를 다니면서 역량 개념을 많이 얘기했어요.

기존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가 없다는 게 우리나라 교육과정 개발의 큰 문제예요. 핀란드와 같이 교육 선진국으로 꼽히는 곳은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바꾸니까 1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공부했을 때 결과가 어떤지, 어떤 교육적 성취가 있는지 평가할 수 있어요. - 한희정 서울정릉초등학교 교사

역량과 교육과정의 연계

변춘희 제가 아는 중학교 교사는 역량이라는 개념으로 학교장이나 동료 교사, 학부모를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서 좋다고 했어요. 국어교사가 마을교과서로 과정평가를 하려고 하는데 왜 쓸데없는 걸 하냐는 지적을 피하고, 수학여행 가는 장소에 대해 모둠별 여행탐방 계획서 작성을 수행평가로 할 때 항의하는 학부모에게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때 무엇이 진짜 도움이 되겠냐고 말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요. 중학교는 자유학기제와 관련해 역량을 도입하고, 2,3학년에도 이런 시도를 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교사가 많아졌다는 거죠.

현광일 역량은 기업에서 특정한 업무를 수행할 때 탁월하게 그 일을 수행한 사람들에게서 뽑아낸 개념이에요. 이게 교육으로 들어올 때 능력주의를 역량으로 재포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예요.

한희정 쓸데없는 지식 암기교육에 지친 사람들이 역량이라는 것에 혹했는데, 내용은 없고 결국은 교육의 본질을 찾아가는 거밖에 안 되는 거죠. 역량교육을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활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교과교육 목표도 다 그래요. 학교에서 물총놀이를 했으면 물총놀이를 하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뭘 배우려고 물총놀이를 했냐는 거예요. 가정환경이 좋은 아이들은 집에 가서 내가 뭘 했는지 가족들과 이야기하면서 후체험을 거치며 내면화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체험이 망각의 쓰레기 더미로 흘러가버리는 거죠. 모든 체험과 경험이 버려지는 거예요. 그 과정까지 학교에서 해야 하는 거죠.

이찬승 중요한 걸 말씀하셨는데 이번에 통합사회, 통합과학의 각 단원에서 핵심 질문과 핵심개념으로 시작하라는 역순서이론이 들어왔잖아요. 여기서 교사가 범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죄악이 있는데 활동을 위한 활동을 하는 거죠. 활동을 했는데 교육목표와 연계가 드러나지 않고 활동을 통해서 새로 만들어진 지식이 과거의 지식과 통합하는 과정이 없는 것은 죄악이라는 거죠. 저는 활동 중심 수업의 위험성을 많이 얘기해요. 아이들이 얼마나 고르게 성장했는지는 고민을 안 해요.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학습이 일어났는지 확인을 안 하는 거죠.

한희정 서울시교육청의 안성맞춤 교육과정에서 놀이학습은 레크리에이션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희하는 인간이므로 그것을 수업에 접목하는 것이 놀이학습이죠. 아이들을 놀게 하고 레크리에이션하는 건 그냥 시간을 소비해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보드게임을 가져와서 놀게 할 뿐이고 자기 지식으로 재구성하는 게 없어요. 이렇게 하신 선생님들이 ‘1학년 때 놀게만 놔뒀던 아이들을 그대로 2학년에 올려보내서 어떡하냐’며 2학년 담임선생님에게 미안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학부모 설문결과도 편안해서 좋기는 했는데 걱정이 된다고 해요. 교육적인 설계와 놀이의 특성을 결합해서 학습하는 것이 본질이에요.

변춘희 놀이를 교육의 수단으로 쓰려고 했는데 목적이 돼버려서 문제라는 거군요. 저의 경우 아이들이 우즈베키스탄에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수업 전, 중간 휴식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있었어요. 학교에 일찍 가고, 수업 후 한 시간씩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뛰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이라고 하면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도성을 가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교실에서 수업을 대신하는 놀이는 개념이 다르군요.

한희정 체험하고 체험 후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거기에서 무엇을 학습했는지 이런 과정을 자기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을 지식으로 재구성해가는 과정이 교육이죠.

현광일 놀이는 규칙을 잘 지킬수록 더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놀이를 하는 이유가 아이들이 지식에 억눌렸기 때문이라고 하면 학습은 학원에서 받고, 학교에서는 쉬라는 개념이 돼버려요. 역량이라는 개념을 현장의 교사들이 얼마나 현실에 맞게 재맥락화해서 쓰느냐가 중요해요. 이 개념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알면 교사가 재맥락화할 때 과잉하지 않고 적절히 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개념을 현장에서 판단할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예요. 듀이가 역량과 교과의 상호작용, 생활 속에서의 활동들을 얘기했던 거와 같아요. 자유학기제의 주제통합 같은 것으로 과목을 선택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다 흩어져버리는데 체험이 내면화되는 과정으로 가려면 일정한 집단성이 유지되어야 가능하잖아요. 외부강사가 진행하는 경우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이 없어요. 교사가 아이를 계속 지켜봐야 하고 체험이 교과과정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보고 안내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는 게 맹점이죠.
시험 같은 걸로 평가할 수 없어요. 학생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는 교사의 언어적 능력이 있어야 해요. 교과의 전문성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가는가를 묘사하는 능력도 교사에게 필요하다고 봐요. 학부모도 성적으로 아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파악하는 능력, 소통하고 묘사할 수 있는 언어적 자원을 가지는 게 필요해요. 역량을 공동체가 가지는 문화적 자원으로 보면 보모에게도 소통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거죠.

변춘희 교사에게 요구되는 관찰하고 묘사하는 능력이 학부모에게도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한희정 학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라는 거예요. 학교에서 숙제를 내지 말라고 하지만 숙제가 필요한 학생도 있거든요. 학교만 보내면 학교에서 다 해결하라고 왜 가정에까지 부담을 주느냐고 따지는데 아이가 어떤 학습을 하고 있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교사는 누구와 얘기해야 하죠? 학교는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인데 보육까지 요구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말을 부모님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학교에 와서는 친절한 선생님을 원해요. 부모님과 정상적으로 소통해본 아이들은 선생님과도 정상적으로 소통을 해요. 부모가 자기의 말을 안 들어주는 아이는 학교에 와서도 똑같이 해요.

이찬승 학부모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해요. 역량이 교육과정으로 들어올 때 누구한테 유리하고 누구한테 불리하냐를 따져보면,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집의 아이는 부모가 책을 읽어줄 기회가 적기 때문에 지식교육이 절실히 필요해요. 전환학년을 통해서 한번 놀아버리면 책 읽는 것과 완전히 멀어질 수 있어요. 지금 위험한 도박을 하는 거예요. 저는 지식과 역량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지식의 철저한 습득을 강조해요. 한국은 지식교육을 폄하하고 배척하면서 역량이 들어 왔어요. 이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변춘희 지식암기 위주의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만이 아니라 충분히 연구하고 준비해서 각자 해석하는 것이 아닌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육현장에서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와 교육연구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귀한 시간을 내주신 세 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역량이라는 개념을 현장의 교사들이 얼마나 현실에 맞게 재맥락화해서 쓰느냐가 중요해요. 학생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는 교사의 언어적 능력이 있어야 해요. 교과의 전문성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묘사하는 능력도 교사에게 필요하다고 봐요. - 현광일 (사)마을공동체연구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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