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나는 모르겠어’, 무지의 역량

글. 진은영(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2015년 교육과정 개정 이후 역량 기반 교육이 강조되면서 교육전문가들이 바빠졌다. 미래 사회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핵심역량은 무엇이며, 그 역량들을 교과과정을 통해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이 열심히 고민하며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역량 기반 교육은 교육의 무게중심이 ‘무엇을 아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한 지식 습득보다 수행 능력이 더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아는가’라는 문장이 더는 음미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문장에 ‘무지의 역량’ 또는 ‘의문의 역량’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숨어 있다고 귀띔해준다. 그녀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영감이란 예술가나 시인에게만 찾아오는 특권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제나 영감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뚜렷한 신념으로 자기 일을 선택하고 애정과 상상력을 가지고 그 일을 수행하는 교사들, 의사들, 정원사들, 그리고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어려움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늘 호기심을 가지고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며, 이미 해결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물음을 묻는다.

물론 독재자들, 광신자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혈안이 된 정치가들도 자기 일을 사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그 일을 수행한다. 이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 오로지 그 하나만으로 영원히 만족합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철저히 관심 밖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쪽을 향해 눈을 돌리고 주의를 빼앗기는 순간, 자신들이 주장하는 논쟁의 힘이 약해질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죠.”(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451쪽)

인류의 오랜 지성사에서 ‘무엇을 아는가’라는 물음은 아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지를 예감하고 더 넓은 세계를 열기 위해서 물어져 왔다. 시인의 비유처럼 ‘나는 모르겠어’라는 한 마디의 말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 있다. “그 날개는 우리의 삶 자체를, 이 불안정한 지구가 매달려 있는 광활한 공간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내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만들어줍니다. 만약 아이작 뉴턴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사과가 그의 눈앞에서 우박같이 쏟아져도 그저 몸을 굽혀 열심히 주워서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끝과 시작>, 452쪽)

무지를 고백하고 확신을 의문에 붙이는 이 역량은 ‘무엇을 아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의 교육학적 전환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야 한다. 창조적 역량이란 과업 수행의 과정에서 발휘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주어진 과업의 의미를 의문시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미래 사회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역량을 개발하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가정된 미래 사회가 우리가 정말 꿈꾸는 사회인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서로의 꿈들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교사들과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이런 물음에 대해 함께 몽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현장에서 재빨리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소득 없는 몽상과 한담의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탐색과 대화가 없다면, 역량 기반 교육은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 세워진 멋진 건물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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