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의 교육현장

학생들이 만든 펄떡펄떡 ‘심장이 뛰는 책’

마을교과서를 만들며 깊어진 마을 사랑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몇 해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 쓴 얘기다. 그런데 사랑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먼저 알고 있어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글. 윤근혁(서울양천초 교사, <교육희망> 전 편집국장) / 사진제공. 윤근혁, 구본희

3학년 학생들이 마을교과서를 구상하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될까? 알면 사랑하게 될까?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이 아니다.”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쓴 글이다. 서화 수집가였던 김광국의 그림첩 <석농화원>에 쓴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알고 보게 되는 것이리라. 교사인 나. 올해 학생들과 함께 정한 급훈 3가지 가운데 하나가 ‘나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자’다. 나라를 사랑하려면 나와 내 가족, 내 친구, 그리고 내 마을부터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학생들이 마을에 대해 참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궁금함 속에서 잡은 책이 있다. 바로 <관악중 마을교과서>다. 이 책은 여느 지역처럼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만들어준 마을교과서가 아니다. 지난해 관악중학교 3학년 학생 전체가 힘을 합쳐 펴낸 것이다. 이 학교 3학년 6개 학급 142명이 마을 골목을 누비며 만들었다. 이 학교에서 지난해 3학년 부장을 맡았던 구본희 교사는 지난 3월 14일 다음처럼 말했다. “관악중 마을교과서는 몇몇 학생들만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다 같이 참여한 것이다. 이번처럼 전체 학생들이 다 참여해 마을교과서를 만든 사례는 우리 학교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학생들은 우선 대단원을 6개로 나눴다. 그런 뒤 학급 모둠별로 소단원을 나눠 맡았다. 모둠별로 조사하고 취재한 정보는 우선 홈페이지에 올렸다. 학생들은 서로 돌아가며 다른 모둠의 내용을 읽은 뒤 댓글을 달았다. 이 ‘집단 숙의’ 과정을 통해 알토란 같은 마을교과서가 나왔다. 6개의 대단원은 다음과 같다. 1. 관악의 지리, 2. 관악의 역사, 3. 관악의 자연, 4. 관악의 문화, 5, 관악에서 배우고 꿈꾸기, 6. 관악에서 생활하기. 모두 115쪽으로 된 이 마을교과서만 읽으면 ‘관악박사’가 탄생할 정도로 알찬 내용이 담겨 있다.

2단원 ‘관악의 역사’에는 달동네, 고시촌, 봉천동 재개발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속에는 1990년 봉천동 산꼭대기에 있던 내 대학 시절 사글셋방이 사라진 이유도 적혀 있다. 역시, 학생들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관악의 괴담, 관악의 전설 등 재미있는 읽을거리도 빼놓지 않았다. 6단원 ‘관악에서 생활하기’에는 관악의 쇼핑몰과 시장, 그리고 관악의 맛집까지 담았다. 사진도 엄청 많다. 학생들이 발로 뛰며 직접 찍은 게 대부분이다.

관악중 마을교과서 표지와 첫 단원

직접 만들어야 사랑이 깊어지는 것

마을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다음은 학생들이 이 책에 적어놓은 소감문이다.

“소단원 벽화길을 골랐다. 관악구 행운동 골목에 벽화를 그린 이유는 조금 남달랐다. 바로 여성 1인 가구가 절반에 육박하는 이곳에서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절도율은 현저히 낮아졌고 강간 같은 중대 범죄는 사라졌다. 지역 주민이 느끼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도 10%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3학년 3반 이○○)

알게 되면 느끼게 되는 것, 그리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알게 되면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나에게도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응급실에 갈 만한 상황에서 아무 곳이나 가서 봉변을 당했는데, 이 수행을 하고 나서 어디에서 무슨 검사를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어 나중을 위한 대비를 하게 됐다.” (3학년 4반 오○○)

이 교과서를 만든 이는 학생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길도 있었으니 바로 이 학교 국어과 구본희, 황정희 교사와 사회과 박래광, 서미라, 강효순 교사다. 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교과서의 큰 틀을 제공했다. 그리고 참고자료를 찾는 방법, 공동 작업을 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이 수행평가다”라는 으름장 섞인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만드는 데 쓴 시간은 지난해 10월 한 달 정도다. 국어와 사회 융합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단 하나의 마을교과서가 탄생한 것이다. 관악중은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한 해 동안 국어와 미술 시간에 마을길 만들기 프로젝트, 체육시간에는 조깅길 만들기 프로젝트를 벌였다. 미술시간에는 우리 동네 건물을 그리도록 했고, 국어시간에는 관악의 보물찾기 프로젝트 수업을 펼쳤다. 이 같은 노력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지난해 10월 한 달 만에 마을교과서가 뚝딱 탄생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 교과서 뒷부분에 마을 역사탐구 내용도 담았다. 내용은 학생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인터뷰한 것. 이 책에는 모두 10개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 가운데 3학년 4반 윤 아무개 학생이 할아버지를 인터뷰한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말씀해주세요.”, “나는 시장 쪽에서 장사를 하고 할머니는 공사장 일손을 도왔어. 사업도 몇 번 했고, 그렇게 돈 모아서 여기로 집을 옮겼지.”

이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 박래광 교사는 “역사가 교과서 속의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우리 가족, 이웃, 마을, 이어서 내 마음속에 펄떡펄떡 살아 뛰는 삶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악중은 이 마을교과서를 300부 찍었다. 지난 2월 1일에는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책을 받기를 원하는 1, 2학년 학생들과 마을활동가들에게 책을 나눠줬다. 이 학교 도서관 책장에도 꽂아뒀다.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구본희 교사는 “중3 수준이면 어느 학교든 다 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활동을 해야 할까? 구본희 교사는 다음처럼 설명했다. “알아야 사랑하잖아요. 마을을 사랑하게 하려면 마을에 대해 알게 하는 게 중요하죠.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데 책 만들기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다 만든 책을 읽는 것도 물론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직접 만들면서 사랑은 깊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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