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학업적 성취 너머의 삶의 성취

미국 영화 <어메이징 메리>

삶을 가르치는 교육은 교과목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쉽게 등한시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삶을 가르치는 교육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어메이징 메리>다.

글. 이중기

특출난 재능의 아이, 영재학교만이 답일까?

오늘은 미루고 미뤄왔던 메리의 학교 가는 날. 하지만 메리는 영 기분이 마뜩잖다. 삼촌과 홈스쿨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면 지루하게 더하기 빼기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몸서리도 친다. 그럴 때마다 메리의 유일한 보호자인 삼촌은 메리를 단호하게 타이른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삼촌은 메리를 기어코 스쿨버스에 태운다.

학교생활은 메리가 걱정한 그대로였다. 1+1과 같이 지루한 문제를 풀고 있자니 적잖이 몸이 쑤셔온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는 천재 수학자였던 엄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특별한 재능’의 아이기 때문이다. 메리의 특별한 재능이 드러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계산기 없이 복잡한 암산을 해내는 등 바로 두각을 나타낸 메리. ‘지루한 수업시간’, ‘수준 떨어지는 학생들’. 학교생활은 도저히 흥미를 붙이기가 힘들다. 때마침 사고도 터진다. 스쿨버스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구해주다가 그만 메리가 상급생을 책으로 때려눕힌 것이다. 미국은 무기를 사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엄격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메리는 며칠 되지 않은 학교생활에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징계를 걱정하며 찾아간 교장실. 그러나 학교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일반학교에서 메리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영재학교에 보내면 어떻겠냐는 것.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알고 있는 학교에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신데렐라’와 같은 전개가 이어진다. 하지만 삼촌은 단호하다. “그래도 일반 학교에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학교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흔히 특별한 재능은 ‘특별한 인생’을 만들고는 한다. 그러나 모든 특별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을 산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재’라 손꼽히는 아이들은 영재교육 시스템에서 ‘다른 교육’을 받는다. 자신의 재능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심화학습.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삶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은 등한시되기 일쑤다. 메리의 삼촌은 이런 ‘다른 교육’으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메리의 엄마를 안타까운 사고로 잃었다. 그렇기에 메리 또한 동생처럼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재능은 어느 한 분야에 특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재능이 삶의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해 쉽게 간과해버리는 것들,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쉽게 치부되는 것들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기,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세계를 더욱 넓고 깊게 바라보기, 생명에 대한 가치와 각각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등 특정 교과목을 통해 알게 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학교를 통해, 친구를 통해, 선생님을 통해 시나브로 익혀나갈 수 있는 것들이다.

메리의 삼촌 또한 메리가 잘하는 분야를 더욱 특출나게 만드는 공부가 아닌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기를 원했다. ‘특별한 인생’이 아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길 바랐던 것이다.

학업을 넘어 삶을 성취하기

영화의 본래 제목인 <Gifted>는 ‘재능이 있는’ 또는 ‘좋은 것을 지닌’이란 뜻으로 흔히 영재를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다. ‘gift’가 ‘선물’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만큼 ‘Gifted’가 주는 어감은 남다르다. 재능은 자신이 성취하는 것이 아닌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미권에서는 재능을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 표현해왔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매개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적어도 영미권에서는 재능과 성취의 가치를 동등한 기준에서 바라보지 않은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삼촌의 생각 또한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메리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진 못한다. 그가 양육권을 두고 할머니와 법정공방을 벌이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평범함’은 그래서 더욱 가치 있다. 메리를 이루고 있는 수만 가지 부분 중에서 어느 특출난 한 부분에 매몰되어 살아가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정공방 장면에서 많은 관객은 메리 할머니의 의견도 ‘일리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학교가 ‘학업’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평범한 학교에 다녔던 메리는 기대만큼의 학업적 성취는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그리고 제각기 특출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보편적 관습을 몸으로 체득해나간다.

메리가 일반학교에서 경험했던 교육은 홈스쿨링이나 영재학교, 고액과외로는 절대로 성취할 수 없는 것들이다. 교과 너머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성취. 이는 학교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학업의 많은 부분을 사교육에 빼앗겼음에도 공교육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공교육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어메이징 메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공교육은 여전히 가치 있고,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업의 성취를 넘어 삶을 성취하는 것. 학교라는 공간이 빚어내는 교육의 가치는 이렇듯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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