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명예퇴직 하시는 K형(兄)께

글. 강원희 교감선생님(여의도고등학교)

아니 벌써? 왜, 힘드셔서 그만두시나요? 갑자기 명퇴를 신청하고 교단을 떠나시다니요. 아직 4년 정도는 남았잖아요. 따뜻한 봄이 오면 밖에 나가서 옛날처럼 고기 구워 먹으며 정담을 나누자고 해놓고, 의리 없이 혼자 그만두신다니 좀 그렇습니다. 새 학교로 가시자마자 나이 60이 다 되어 담임을 맡았다고 하셨을 때만 해도 정년까지는 꿋꿋하게 가실 줄 알았는데….

혹시, 아이들한테 인기도 없고, 눈은 침침하고, 말은 어눌해지고,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잠자는 아이들만 있고, 게다가 나이 먹고 업무 능력이 떨어져 학년 초 소위 ‘폭탄’이 되어 슬프게도 발붙일 부서가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형을 만난 게 첫 학교에서 근무한 지 3년 차 즈음인 것 같은데…. 그때 형은 중학교에서 근무하다 고등학교로 올라왔을 때죠. 특유의 굵은 갈색 안경테가 학구적으로 보이는 데다 가끔은 너그러움과 느긋함이 묻어나는 말투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마음속 고민도 함께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20대 말 30대 초반을 보냈었죠. 겨울방학 때 보충수업 끝나자마자 둘이서 대청봉에 올라 하룻밤을 보냈던 30년 전 기억이 새롭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에 석유 버너에 불을 붙여 눈을 녹여 밥을 해 먹으면서도 형은 투덜거리지 않으셨죠. “원해서 온 건데” 하면서. 그런데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항상 교과서적인 형의 모습이 어떤 때는 몹시 답답하고 고지식해 보였습니다. 가끔은 융통성 있고 자유인 같아 보이면서도 자기만의 생각에 잡혀 있는 듯 옹고집도 있어 저와 다툰 적도 꽤 있었죠.

형! 기억나나요? 80년대 말 ‘참교육’의 뜨거움이 한창일 때 형은 단식까지 해가며 끝까지 버티다가…. 저는 그것도 답답했습니다. 적당히 타협도 하시지…. 앞날이 구만리인데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같은 동네에 살면서 충고도 여러 번 했었잖아요. 그만 싸우고 학교로 돌아오라고. 거두절미하고, 그동안 학교 현장은 많이 바뀌고 변화했나요? 형은 그래도 이만큼 오지 않았냐고 하실 것 같은데, 저도 일부 인정은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요즘 학교도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쌓인 공문 수십 개를 분류하고, 결재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갑니다.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이야 오죽하실까요. 담임이나 업무 배정, 전보발령이 이루어지는 학년 초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교무실 정신을 빼놓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요즘은 가끔 옛날 생각이 납니다. 때로는 게으르기도 했지만 교실에서는 그래도 나름대로 아이들한테 ‘대접’받던 시절. 힘들더라도 서로 도와가며 초과수당도 없던 학교 일들을 자기 일처럼 재미있게 하던 동료 선생님들, 못다 이룬 사랑의 아픔을 밤새 술로 함께 달래주던 선생님들, 선생 같던 선생님들과 그런 분위기가 불현듯 그립습니다.

아, 그리고 형! 막상 교직을 떠나신다고 하니 제가 학교를 떠나 교육청으로 옮겼을 때 일부러 전화를 걸어 격려해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솔직히 승진과는 거리가 멀었던 형에게 제가 속물적으로 보이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였거든요. 하지만 “강 선생은 잘할 거야”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달픈 시간에 큰 힘이 됐습니다.

형! 이제 따뜻한 봄이 오면 옛날처럼 촌스럽게 밖에서 고기 구워 먹지 말고 럭셔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에 와인 한 잔 대접할게요. 앞으로는 우리도 요즘 신세대 선생님들처럼 세련된 만남을 가집시다. 그동안 겪었던 ‘교육’에 대해 못다 한 고민과 쏟았던 땀을 되새기면서….

명예퇴직 후의 장도(壯途)에 이제는 제가 축하와 격려를 보내드립니다. K형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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