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우리 음악선생님은 멀쩡하신데요?”

글. 이윤주 선생님(전농중학교 음악교사)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유사시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됐다. 하지만 공동체적 함의 이전에 법과 제도가 선행되어 제정됐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공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이전 시대에 정신적, 신체적으로 기능이 손상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삶에서 배제된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그러한 불행을 면한 ‘정상적인’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공포와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황량하고 낙후된 정신병원이나 장애인 수용시설 등에 격리했다. 요즘도 종종 지적장애인에 대한 착취나 신체적·성적 학대사건, 특수학교를 자산 목록 1호인 부동산 가치 하락의 주범으로 보는 시위대의 소식이 들려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동등한 구성원이 아닌 이질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이자 15년 경력의 음악교사다. 종종 사람들은 안 보이는데 그 힘든 중고등학생들을 어찌 가르치느냐는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보이는 사람도 교사가 되기 힘든 세상에 엄청난 노력으로 교사가 된 것에 대해 경탄을 보낸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것이 여러모로 도전적이고 소진되기 쉬운 일임은 분명하지만,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더하여 노력을 안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 극한적인 노력은 해본 적도 없어 듣기에 불편하다. 호의의 뜻이었지만, ‘장애인은 아이들을 가르칠 능력도, 임용고시를 통과할 능력도 없을 텐데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라는 전제가 내포된 것이다. 반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나를 특별히 다르게 대하지 않으니 내가 더 힘들어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는 것 같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 신규 미술 선생님의 임상장학을 들어갔는데, 수업 주제가 무려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이었다. 나는 벌써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말을 듣고는 웃음을 참다 눈물이 났다. “저희가 시각장애인을 평소에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장애인인데 왜 장애인을 본 적이 없어?”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선생님은 멀쩡하신데요?”

한편, 아이들은 내가 안 보여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수업 중에 보드마카나 펜을 떨어뜨리면 바로 주워주지만 학급의 규칙들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아이가 몰래 딴짓을 하다가 걸리면 옆에 아이가 말한다. “야, 선생님이 보신다. 너무 심하다고 내가 그랬지?”

통합교육의 시행 초기에 장애학생의 문제행동이 일반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듯이 관리자와 동료 교사들은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고 장애교사를 받아들이며, 걱정과 우려의 눈초리가 잦아드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걱정과 우려를 보이지 않는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비슷한 면을 공유하며 다름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요새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못하고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곳곳에서 자주 보인다. 다름을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공동체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아는 성인이 되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게 모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장애학생과 장애교원에 대한 열린 시각과 지원들이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발전과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이다.

이윤주 선생님

  • 2001-2003 경기 부천 상도중학교
  • 2004-2009서울 한빛맹학교
  • 2010 경기 화성 동화초등학교
  • 2011-2015 서울 전일중학교
  • 2016-2018 서울 전농중학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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