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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상상력의 근원은 어디인가?

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 - 중국편>

인어와 천둥의 신. 어떤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가? 대부분은 안데르센 동화 속 인어공주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토르의 모습을 머리에 그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서양의 이야기에만 길들여져 왔다. 서구 중심의 신화주의는 우리의 상상력에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상상력의 벽을 허물기 위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동양신화에 관심을 가져보자.

글. 최미숙 선생님(서울문정초등학교)

우리의 상상력은 자유로운가?

가슴이 뛰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들어보지 못한 신들이 우리 존재의 근원이자 의식의 뿌리라니, 게다가 재미있는 비유와 상징이 머리를 쳤다.

혼돈의 신 ‘제강’의 모습을 보자. 얼굴 없는 코끼리 같은 뚱뚱한 몸매에 춤과 노래를 잘했다고 한다. 의식의 분리가 일어나기 전 혼돈 속에 갇힌 답답함을 감각기관과 얼굴이 없는 이미지로 표현했다. 소리와 움직임이 살아 있는 우주의 충만한 에너지를 춤과 노래로 상징했다. 세상이 생겨나기 전 혼돈을 어둡고 캄캄하게 그리는 세계의 많은 신화보다 얼마나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상상인가? 또 ‘인어 아저씨’는 어떤가? 물고기 사람하면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주인공 ‘인어공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인어 아저씨라니…. 보는 순간 이상하고 웃겼다. 왜 이상하지? 너무 낯설다. 안데르센 동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길들여져 있던 내 상상력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했다.

서양의 걸리버 여행기처럼 동양신화에서는 먼 곳의 이상한 나라를 소개하기도 한다. 가슴이 뻥 뚫린 관흉국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간적 감성과 느낌이 없이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 동양신화>는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요즘 인기 있는 어린이들의 장난감이나 게임의 주인공들 이름을 보면 대부분 북유럽 신화나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오딘, 토르와 망치, 로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그리스 로마신화 만화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자신의 가족 내력은 잘 몰라도 서양 신화 신들의 족보는 줄줄이 댈 수 있다. 어느 정도 줄글 책을 읽기 시작하면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에 열광한다. 어릴 때 무의식의 기억들은 사고와 감정의 바탕이 된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시대에 서양의 신화를 읽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서양의 신화를 잘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동양의 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어른의 편향된 문화 인식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현상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상상력은 자유로운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변한다. ‘인어 아저씨’를 보고 낯설고 어색했던 경험으로 충분히 동의가 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국어 수업으로 들어온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본문이라는 것이 작품이 갖는 온전한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정책이나 저자의 입맛에 맞게 부분 발췌가 되거나 낱낱이 해체되어 국어의 기능적인 것만 강조됐다. 이는 시간은 많이 배당됐으나 아이들이 자기 삶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는 국어 수업이 됐었다. 국어 수업은 언어의 기능뿐만 아니라 언어에 담긴 정신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한 학기 한 권 깊이 읽기’의 도입은 환영할 만하다. 동시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교사용 지침으로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온전히 교사에게 맡겨놓았다. 책읽기란 그 속에 흐르는 정신, 자신의 삶과 연결, 언어의 세련 등 통합적이면서 극히 개인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책읽기가 수업으로 들어올 때 교사의 책 선택에 있어서 다양한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세계와 우주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왔던 신화를 보면서 <이야기 동양신화>는 나의 상상력이 어떻게, 어느 정도 편향되어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상상하는 데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상상력의 보고(寶庫)

책을 읽어가면서 이 책의 미덕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게 했다. 첫째, 신화학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독특한 상상력과 이미지가 가득한 풍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 가짓수로 말하면 500쪽 속에 500여 가지는 될 것이다. 게다가 600여 컷의 그림 자료를 통해 고대 사람들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미지화했는지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다. 고대인들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이미지화는 마치 현대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을 보는 듯하다.

둘째, 동양과 서양 신화의 공통점과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한 탁월한 해설로 인해 신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전에 아이들과 읽었던 <북유럽 신화>를 다시 펴 들었다. 두 책을 번갈아 읽으면서 동양인의 마음과 행동, 서양인 사고방식의 원형을 보게 됐다. 거인을 처치하고 갖가지 난제를 극복하며 영웅이 되는 ‘토르’와 열 개의 태양을 화살로 떨어뜨리고 온갖 요괴를 물리치는 ‘예’의 이야기는 신화학자 조지 캠벨의 “영웅이 걷는 길은 지상의 길이지만 우리 내면의 길이기도 하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문제들을 극복하면서 외로이 영웅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동서양의 신화가 말을 건다. 그러나 ‘토르’의 모험은 개인의 우정과 원한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예’는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해결을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셋째, 중국 신화라기보다 동양 신화로서 한국 문화와의 깊은 연관성에 대한 통찰력은 우리 문화 속에 감추어진 우주의 신비와 삶의 지혜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됐다. 우주와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뭔가 해보고 싶은 의지로 스멀스멀….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보게 했다. <한겨레 옛이야기-신화편>을 읽으면서 아이들과 나눌 대화를 상상하는 재미란! 한 권의 감동이 다른 읽을거리를 찾는 동력이 되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넷째, 창조와 치유의 여신 ‘여와’, ‘서왕모’를 통해 여신들의 지위와 위치를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원래 신화에서는 남신보다 여신이 더 근본적인 창조자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동양신화에서 가부장제가 되면서 여신들이 주체성을 잃고 연인이나 배우자 혹은 딸의 자리로 밀려난다. 이 책에서는 대지와 창조의 원형인 여성성이 살아 있는 여신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풍부한 고증 자료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 상상력이 제자리를 찾을 날을 기다린다’로 책을 맺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말이 ‘서양신화에 편향된 상상력에 동양신화의 상상력을 되찾자’라는 의미로만 들리지 않았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미래 아이들에게 인간과 우주의 근본에 대해 신화로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과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오래된 신화라니? 신화는 상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동양신화 - 중국편>

정재서 저 | 김영사 펴냄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언제까지 인간다울 수 있을 것인가? 등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모습을 간직한 신화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삶에 대한 지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동양의 문화를 동양의 시각으로 풀어낸 재미있는 신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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