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현실의 담을 넘어서는 용기와 올바른 과정

한국 단편 영화 모음 <시선 사이> 속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학교에서 떡볶이를 못 먹게 한다? 떡볶이라는 말랑말랑한 소재로 풀어낸 이 작품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학생인권이다.

글. 이중기

어느 날 교문이 폐쇄됐다!

지수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학교 앞 떡볶이 가게에서 모자란 점심을 해결한다. 단짝인 현서와 민영도 언제나 함께다. 특히 민영이는 빼놓을 수 없는데, 민영이의 삼촌이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지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인 셈이다.

그런 지수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학교가 구에서 가장 낮은 학업성취도를 보인다는 이유로 점심시간 교문을 폐쇄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떡볶이를 해 먹을 정도로 ‘1일 1떡볶이’를 즐기는 떡볶이 마니아인 지수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성적과 떡볶이가 당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영화가 상정한 상황은 익히 볼 수 있는 상황 중 하나다. 학교가 등하교 시간만 제외하고 교문을 폐쇄한다. 그 이유는 학업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익히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이치에 맞는 상황이 아니다. 먼저 교문 개폐 여부와 학업 성적 간의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행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체 학업 성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조치가 내려지기까지의 결론 도출 과정은 ‘으레’ 혹은 ‘그러려니’와 같은 추상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추론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학생들이 입어야 하는 피해는 명징하다. 당장 지수만 하더라도 점심시간마다 한 그릇씩 뚝딱 비워내는 떡볶이를 먹지 못하게 됐다. 오전에는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수업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든든하게 차오른 뱃심으로 오후를 버텨낸다. 하지만 교문 폐쇄로 지수의 루틴은 완전히 어그러진다. 지수라는 한 개인이 영위할 수 있는 일상의 법칙을 학교가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학교의 목표를 위해 학생을 희생하는 일.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문화는 조직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을 너무나 당연시 여겼다. 학교에서는 더욱 빈번했다. 학생들은 의식을 가진 한 개인이 아니라 객체들의 군집으로 인식됐다. 그런 인식 속에서 학교라는 조직의 목표를 일개 객체인 학생이 저지한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인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선’이라는 테마로 오랫동안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단편영화 모음 <시선 사이> 속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이 ‘해묵고도 지지부진한’ 논쟁을 다시금 꺼내든 작품이다.

학생인권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문제가 왜 지금까지 ‘해묵고도 지지부진’해왔을까? 이는 조직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언제나 ‘그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 또는 공동체를 위해 때로는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리고 이는 지금보다 이전 시절에 보다 필요로 했고 사회는 자연스레 개인의 희생을 사회 공동체의 미덕으로 삼아왔다. 개인이 희생을 감내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용기 있는 행동, 또는 당연히 가져야 할 책무와 같은 것으로 인식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자유가 더욱 보장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사회의 인프라와 통념은 불일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지수가 성적 때문에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 또한 이러한 통념과 변화한 사회의 불일치로 벌어진 일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대의’만큼이나 개인의 ‘감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 또한 이러한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미투 운동뿐만이 아니다. ‘으레’ ‘그러려니’ 하고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여러 불합리가 해소되고, 재조정되고, 다시금 고민하는 계기가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미성숙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학생 또한 하나의 주체로서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가치. 이러한 가치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속도와 변화의 폭은 아니지만 조금씩 학교에 녹아드는 중이다. 영화 또한 현실 사회 속 교육의 변화속도에 지지를 보내는 모양새다. 지수는 ‘성적도 안 좋은 주제’에 수업시간에 잠꼬대를 했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모욕을 당한다. 갑자기 지수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선생님께 달려든다. 그리고 선생님 등 뒤에 매달려 공격하기 시작하는 지수. 그렇다. 지수는 좀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지수의 이런 ‘망상’은 망상으로만 끝이 난다. 떡볶이를 먹게 하지 못하는 강압적인 상황. 여기에 이어진 선생님의 인신공격성 발언에도 망상 속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는 건 옳지 못한 거다. 그렇다면 지수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현실에 순응하고 떡볶이를 포기하는 것이었을까?

용기 있는 선택, 그리고 그 과정의 올바름

지수의 선택은 앞선 망상보다 훨씬 용기 있는 일이었다. 체육시간, 우연히 공이 교문 밖으로 넘어가 떡볶이 가게로 향한다. 교문에 찰싹 달라붙어 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지수. 체육 선생님은 교문 밖으로 넘어가면 각오하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민영이 삼촌이 대신 공을 던져주지만 지수는 교문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 그러다 지수는 결심이 선 듯 교문을 넘는다. 그리고 한달음에 떡볶이 가게로 달려가 꿈에도 그리던 떡볶이를 쟁취한다!

좀비로 변해 선생님을 공격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변화는 현실의 담을 넘어서는 용기, 이를 관철하는 의지, 그리고 과정의 올바름에 있다. 조직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개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자유가 억압됐을 때 용기 있게 현실의 담을 넘어서는 것. 영화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프로파간다가 짙게 묻어나는 제목처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토록 명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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