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구석을 발견하는 힘

글. 윤정은 선생님(강일고등학교)

“미술을 왜 배울까?” 이 질문에 금방 대답하는 학생은 별로 없다. 차라리 “시간표에 있으니까요”라고 솔직히 답해주는 학생이 있다면 오히려 매끄러운 수업 시작이 가능해진다. 까닭을 생각해보면 1학기 첫 시간에 첫 질문을 받은 학생들은 어색한 분위기 탓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 관련 진로를 꿈꾸는 학생이 아니라면 입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학생들로서는 수능에 나오지 않는 미술의 궁극적 가치는커녕 실효성조차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 짐작해볼 뿐이다.

작년 2학년 학생들과 했던 ‘설치 미술’ 수업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열정, 그리고 성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교실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만 기뻐하던 학생들은 학기말에 열정적인 창작자가 되어 있었다. 교사들만 이용하게 되어 있는 승강기는 핵폭탄으로 변신했고, 전시 기간 빨간색 셀로판지로 조명을 덮은 승강기 안에서 선생님들은 붉은 얼굴의 어색함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비판적 의도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체험했고, 작품의 창의성에 대해 여러 차례 칭찬해주셨다.

설치 미술 수업을 할 때 가장 놀라운 점은 학생들의 시선이었다. 시선의 핵심은 ‘구석을 발견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그동안 무심히 넘겨왔던 구석구석을 모두 찾아낸다. 그리고 ‘보물찾기 게임’에서 가장 좋은 보물 보따리를 찾은 듯 가슴 벅찬 표정으로 교사에게 달려온다. 그것은 새 부리 모양을 닮은 환기구, 혹은 코끼리 코처럼 보이는 배수관 등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곳을 선택한 이유를 기대감에 찬 얼굴로 설명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입을 통해 공간의 구석이 우리 삶의 구석으로 치환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발견해낸 ‘구석’은 얼마나 소중하고 신나는 보물인가? 또 설명을 듣고 칭찬을 하면 ‘앗싸!’를 외치며 자신들의 노력과 성과에 감탄한다. 함께 학교를 헤집고 다니며 보물을 찾아낸 ‘우리’를 서로 격려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이때 얻어지는 결속력과 협동심은 덤이다.

구석을 향한 시선은 때로는 변화하고 행동하는 작품으로 실현되기도 했다. 색종이로 꽃을 만들어 학교를 꾸미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팀에게 학교에 잘 가꿔진 화단과 차별되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니 종이꽃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 후 아이들은 5주 내내 때로는 지겨운 제작 과정을 견디며 색종이를 접어 엄청난 양의 종이꽃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종이꽃들을 중앙 벤치가 있는 곳에 설치했다. 설치 당일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해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인 순간, 꽃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꽃은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담임 선생님의 책상에, 친구의 귀에 꽂혀 있었다. 아이들에게 꽃을 나눠주는 행위 자체가 작품의 완성이며, 작품의 형체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에게 간 꽃이 그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변화하며 기쁨과 위로를 전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 후 아이들은 그 종이꽃을 가진 친구들을 발견할 때마다 미술 시간을 회상하며 3학년이 된 후에도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자기 생각과 의도가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변화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경험은 미술의 순기능과 가치에 대한 교사의 장황한 설명보다 더욱 강한 힘을 지닌 것이기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추억담은 그 어느 것보다 좋은 피드백이 됐다.

몇 주의 수업만으로 가능하다 여긴다면 무리한 욕심이겠지만, 아이들이 미술 수업에서 세상의 ‘구석’을 발견하고,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세상의 ‘구석’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퍼져나갈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미술을 왜 배울까?” 아이들에게 다시 이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정답은 없으니, 답이 모두 다르기를, 그리고 자신과 우리의 ‘구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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