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외로움, 소통, 욕망…세 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그림책

마거릿 와일드, <여우>

<여우>의 표지에서 독자를 빤히 응시하는 붉은 여우의 강렬한 눈빛은 도발적이다. “그래, 너는 괜찮니? 행복하니?”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방심하지 마!” 하고 경고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색다른 이 그림책을 만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상실과 위로, 우정과 배신, 후회와 그리움의 이야기와 함께 외로움, 소통, 욕망의 세 가지 키워드까지 덤으로 만날 수 있다.

글. 박은미(독서토론강사)

개와 까치, 그리고 여우의 이야기

<여우>는 2000년 출간 이후 전 세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지속해서 받아온 그림책으로, 2004년 독일 최고 어린이 문학상을, 2006년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오일 페인트, 아크릴, 왁스 등의 재료와 붓 대신 포크나 철사, 끌 같은 도구를 사용해 거친 질감을 표현했으며, 글자 모양을 수직과 수평으로 배열한 편집 방식도 독특하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문자의 흐름과 그림 사이로 끼어드는 글은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주는 역할을 한다. 편안하게 그림책을 감상하려는 독자에게는 거친 질감, 불규칙한 글자 배열과 그림책을 돌려 봐야 하는 수고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면, 이 책을 더 깊이 등장인물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개, 화재로 날개를 다친 까치,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여우의 이야기다. 산불로 불타버린 숲에서 개가 날개를 다친 까치를 물고 자신이 사는 동굴로 온다. 하지만 까치는 개의 그런 호의가 반갑지 않다. 개의 위로와 정성에 까치는 드디어 동굴에서 나와 함께 강가로 간다. “내가 너의 날개가 되어줄게, 넌 나의 눈이 되어줘”라며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달리며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불쑥 나타난다. 개와 까치, 그리고 여우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첫 번째 키워드, 외로움

개는 여우를 “어서 와. 우리와 함께 지내자”며 반겨주었지만, 까치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뒷걸음’치며 두려워한다. 둘 사이에 여우가 자꾸 끼어들게 되고, 까치는 그럴 때마다 여우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어느새 동굴 속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버렸어.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였지”라며 여우의 눈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이 그림책의 백미다. 까치를 향한 눈빛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표지에 이어 다시 한번 독자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작가는 여우와 까치가 있는 밀폐된 동굴이라는 공간의 분위기를 냄새, 후각으로 묘사했다. 그림책에서 아무 냄새도 느낄 수 없지만, 이 장면에서 어떤 독자는 코를 킁킁거릴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이 장면에서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 중 여우의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셨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신을 반겨주지 않고 경계한 까치에 대한 분노, 다정한 개와 까치에 대한 강한 질투, 분노와 질투의 근원이 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복합적이라 우선순위를 매기기 어렵지만 ‘외로움’의 냄새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여우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문이 시작되기 전 속지에서 보면 숲에서부터 개와 까치의 뒤를 쫓아온다. 까치와 개처럼 날개나 눈을 잃지는 않았지만, 불에 탄 숲에서 어떤 상실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개와 까치를 혼자 지켜보면서 여우는 둘 앞에 나타나기 전에 이미 외로운 존재는 아니었을까?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에 의해 다른 감정이나 행동으로 변질되거나 증폭될 수 있다. 여우가 둘 사이에 끼어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둘 사이에 여우가 낄 자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잔뜩 움츠리며 경계하는 까치뿐만 아니라 “어서 와”라고 반겨주는 개에게서도 여우와 친구가 되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두 번째 키워드, 소통의 문제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매일 이곳저곳을 달린다. 하지만 개는 여우의 등장으로 불안해하는 까치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까치가 “여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조심해”라고 말했지만, 개는 “여우는 좋은 아이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에서 까치와 여우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까치는 개를 내려다보고 있고, 여우는 땅을 바라보고 있다.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음을 뜻한다. 개가 “그렇게 말하지 마” 대신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며 까치의 마음을 헤아려봤다면 어땠을까? 한쪽 눈을 잃었기 때문에 균형적으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그것이 둘 사이의 소통을 어렵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세 번째 키워드, 욕망

여우는 한쪽 날개를 다쳐 더는 날 수 없게 된 까치에게 “나는 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바람보다도 더 빨리. 나랑 함께 가자”고 계속 속삭인다. 새에게 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생의 의미를 잃게 되는 사형선고일 수 있다. 개 또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새의 날개는 개의 한쪽 눈과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까치는 “나는 개의 눈이고, 개는 나의 날개야”라고 말하지만, 개의 등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여우의 제안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여우의 등에서 달리는 것이 진짜 하늘을 나는 것은 아니지만 까치가 어리석다고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는 법. 우정보다는 욕망을 선택했기에 혼자 남겨진 사막에서 혼자 힘으로 그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은 오롯이 까치의 몫이다.

이 그림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 책을 몇 살 아이부터 보여줘야 할까? 그림책이 이렇게 불편해도 괜찮을까? 그림책은 따뜻하고 편안하며 읽었을 때 안정을 주어야 한다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이 오히려 더 많은 질문거리와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다. 그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때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읽었을 때 더 깊이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그림책이지만, 일찍부터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아이들도 또래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 읽고 꼭 토론해보기를 권한다.

<여우>

마거릿 와이드 저 | 론 브룩스 그림 | 강도은 옮김 | 파랑새 펴냄

출간된 이후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여우>는 상실과 위로, 우정과 안정, 유혹과 배신, 그리움과 희망을 담은 그림책이다. 현대의 고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다양한 부문에서 상을 받아왔고,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도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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