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우리 모둠은 망했네?

글. 박준영 선생님(서울원당초등학교)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주제통합학습을 마치고 마지막 프로젝트로 팀별로 인권 동영상을 만들었다. 팀 구성에 대해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아이들이야 당연히 원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길 원했지만, 그건 다음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올해도 역시 모둠으로 팀을 구성해 진행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둠을 팀으로 하는 것은 2012년의 경험 때문이다.

보통 4인 모둠을 구성할 때, 뭐든지 잘하는 학생 1명, 중간 정도의 학생 2명, 조금 부족한 학생 1명을 넣어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장점은 모둠 활동 후 어느 정도 완성된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잘하는 학생이 리더가 되어 이끌면, 다른 학생들은 시키는 대로 잘 따른다. 이때 조금 부족한 학생은 무엇을 할까? 부족하지만 책임감을 갖고 어떻게든 열심히 참여하려는 학생도 있고, 조용히 시키는 것을 묵묵히 해내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많이 본 장면은 아무것도 안 하고 무임승차하려 하거나, 심한 장난으로 모둠 활동을 힘들게 하는 경우다. 혼을 내면 그때뿐 결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모둠 결과물보다 과정에 집중한다면 각각의 모둠 수준을 인위적으로 비슷하게 맞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위 뽑기로 모둠을 구성하였는데, 어쩌다 보니 당시 우리 반에서 과제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4명이 한 모둠으로 모였다. 그 모둠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 모둠은 망했네”라고 이야기했다. 순간 나도 당황해서 모둠을 다시 뽑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한번 믿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역시 프로젝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누구 하나 책임감 있게 나서는 학생이 없었고, 자기주장만 늘어놓다 별 소득 없이 프로젝트 기간만 지나갔다. 그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프로젝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자 한 학생이 뭔가 해보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그 학생에게 호응하는 아이가 나타났다. 물론 결과물은 다른 모둠보다 수준이 조금 떨어졌고 그마저도 발표 전날 교사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다른 친구들은 이 모둠이 발표한 동영상에 가장 많은 박수를 보내줬다.

만약 이 아이들이 전처럼 다른 모둠에 묻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조금 더 좋았겠지만, 그 결과물은 다른 친구들의 것일 뿐 이런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노력하고 결과물을 본 두 친구는 이후 학습 태도에서 참 많은 변화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교사로서 내 자세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올해도 역시 한 친구가 따로 놀았다. 감정 기복이 심해 들떠 있다가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아이.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관계 맺기에 매우 서투른 친구다. 그 모둠은 그림을 그려 카드뉴스 형식으로 동영상을 만들고자 했고, 이 친구에게는 지우개질 역할을 맡겼는데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시간을 못 기다리고 사라진 것이다. “선생님, 얘 사라졌는데 어떡해요?” , “아마 인원이 부족한 모둠에서 도움을 요청할 거야. 너희들 그 친구가 지금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 다른 모둠에라도 도움이 되면 괜찮다고 생각해.” 아니나 다를까 다른 팀에 섭외가 되어 열심히 열연 중이다. 그래, 너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열심히 하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지, 됐다.

각 반의 인권 동영상을 모아 5월 31일, ‘원당 인권영화제’를 열었다. 그리고 자기 모둠이 아닌 다른 모둠에서 활약한 그 친구의 출연 작품은 학년 친구들이 가장 잘 만든 인권 동영상으로 뽑혔다. 그래 이런 과정을 통해 너도 조금씩 성장하고, 나도 조금 더 성장하고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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