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신규교사의 생존기

글. 이지혜(서울양진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나는 병설유치원의 7살 반 담임, 이제 4개월을 조금 넘긴 2018년도에 임용된 신규 교사다. 고작 2개월의 교생실습 경험 외에는 7살이라는 ‘생명체’를 만나본 적이 없던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3월을 버텨냈었다. 왜 각자 다른 이유로 26명이 동시에 나를 부르고 있는지 매 순간 당황스러웠고 바빴다.

그래서 지난 4개월 동안 나는 ‘살아남는 기술’을 터득해야 했다. 내 한마디에 모두가 나를 바라보도록 하는 주의집중 방법을 터득해야 했고, 나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 아이가 없도록 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고 26명의 아이에게 규칙 준수를 명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 말 잘 듣기’를 강요하는 사람이 됐다. 26명이 일제히 내 말을 잘 듣게 하려고 놀이시간을 박탈하거나, 부모님께 ‘이르는 행위’까지 하면서 나의 ‘권력’을 차곡차곡 다져가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는 “너는 하늘반의 독재자야”라는 말까지 했다.

26명 개개인의 행동이 나의 말 한마디에 의해 ‘옳고 그름’으로 나뉜다니, 정말이지 독재자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기는 했다. 나를 포함한 27명의 사람이 한곳에 모여 일정 시간 동안 생활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질서와 규칙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모든 질서와 규칙은 교사인 나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신이 아닌 교사가 어떻게 모든 일을 완벽하게 진행하고 해결할 수 있겠는가? 무능력한 독재자가 된 나는 또 다른 부담감을 안게 됐다. 교사인 나 또한 실수를 할 수 있으며, 교사의 말이 무조건 답은 아닐 수 있는데….

그런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선생님도 우리 친구예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당연하지요”라는 나의 대답에 아이들 사이에서 “지혜야”라는 호칭이 시작됐다. 이미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사회적 규칙을 습득한 7살 아이들은 어른, 그것도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한다는 상황이 마냥 재미있었나 보다. 이후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친구로 대할 수 있는 날을 정했고, 그날이 되면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지혜야”가 들려왔다. 굳이 내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도 아이들은 내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불러보기 위해 나를 찾곤 했다.

몇 번 그렇게 ‘야자타임’을 갖은 후 “왜 나를 ‘지혜야’라고 부르고 싶냐”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해봤다. 아이들은 “재밌어서요” , “좋아서요” , “선생님이 친구 같아서요”라고 대답하며 까르르 웃었다. 이 야자타임의 이점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나 또한 이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지혜야, 이것 좀 봐”라는 말에 “나 지금 철수랑 이거 만들고 있잖아. 너는 영희랑 놀아”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으로서 모든 아이에게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게 된 것이다. 절대적인 정답을 내려주거나 문제의 해결사가 되는 역할에서 벗어나 아주 평범하고 자유로운, 학급 구성원으로서 반응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지혜야”라고 부르다가도 “선생님, 철수가 팔로 치고 지나갔으면서 사과도 안 해요”라며 말을 바꾸는 상황도 빈번하다. 나 또한 그 상황에서는 “철수랑 같이 얘기하러 오세요”라며 중재자로서 교사 역할로 돌아간다. 잠깐의 호칭 변화와 일시적인 반말 사용이 아이들과 나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이 주의를 집중해주기를 바라는 ‘권력자’이며, 아이들 또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절대자’의 역할을 내게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 앞에 서 있는 완벽한 ‘독재자’보다는 서툴더라도 아이들 옆에 앉아 있는 ‘조력자’가 되어가고 싶다. 일주일에 하루, 이 시간이 그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내 서랍 속 빼곡하게 모여 있는 아이들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지혜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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