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학교 단상

글. 김종미(서울고등학교 교감)

<안나 카레니나>를 본떠 말하자면 학교의 외양은 모두 비슷하나, 학교의 문화는 모두 제각각의 특성이 있다.

‘다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주된 요인은 구성원 간 결합 양상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학교를 옮기면 등굣길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고 된통 몸살이 난다든지, A 학교에서는 열정적이고 최대치의 역량을 발휘하던 교사가 B 학교에서는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든지, 이 학교에서는 이제나저제나 방학만 기다리는데 저 학교에서는 아이들과의 수업시간이 기다려진다든지 하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 게 아닐까?

새싹이 움트기 전인 이른 봄에 학교에 와서 이제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으니 서울고의 일원이 된 지 한 학기 정도 지났다. 짧은 경험을 가지고 학교가 어떠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학교 구성원의 결합 양상은 물리적 결합과 화학적 결합 사이 어디쯤인 듯하다.

어느 날 아침 교무실에 들어서니 개수대에 씻어놓은 커다란 들통이 보였다. 사연인즉슨 지난밤에 자기주도학습실 학생 지도를 담당한 선생님이 집에서 미리 들통을 준비해와 학생들 간식으로 라면을 한솥 푸짐하게 끓여주었다는 것이다. 지친 학생들을 어떻게 응원할까 고심하셨을 선생님의 마음이 참 고마운 아침이었다.

국어 전공인데 엑셀에 능한 한 부장님은 학교에 공유의 연쇄를 불러왔다. 겸손과 적정량의 경쾌함을 장착하고는 시간표 검색 프로그램, 학생 명렬 검색 프로그램, 분할 점수 취합 프로그램 등 온갖 편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즉시 공유한다. 선생님들의 업무 간소화를 향한 이분의 노력은 교원 학습 공동체의 높은 참여율로 이어지고 있다.

친절하고 빠른 행정실의 업무 지원으로 인해 선생님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건의나 요구가 들어오면 신속하고 정확한 실태 조사 후 합리적인 선택지를 제시하고, 전체 선생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일상화됐다. 그러다 보니 교직원 사이도 돈독해지는 것 같다.

동문의 후배 사랑은 거의 독보적이다. 3월 말 서울고 장학금 지원 동문 초청모임에 참석했을 때 17회 동문이 들려준 사연. 자신의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하고 1984년부터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장학금을 받을 후배들에게 “너도 나중에 후배들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묻곤 했는데, 이후 취지에 공감한 후배들이 ‘한멋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년 2~3명의 후배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서울고의 전통이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상의 몇 장면으로 학교 분위기를 충분히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하지 싶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마다 자원에 기초하여 고유성과 독특성이 발휘되면서 제각각의 학교 문화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 역시 구성원 간 관계 맺음이 종횡으로 누적되어오면서 지금의 ‘학교 문화’가 숙성된 것이리라.

요즘 학교에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 방향으로의 선택교육과정 편성, 핵심역량 기반의 수업과 평가 도입 등 여러 과제가 놓여 있다.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견해가 어긋나고 주장의 충돌도 있겠지만, 진통을 거치며 지혜가 모이고 구성원의 저력은 다시 두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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