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교육

역사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을 만나는 역사 교육

우리는 ‘역사’를 어떤 과목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대부분 학생은 그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사실을 암기하는 과목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역사 교육의 변화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역사 교육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글. 최태성(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나와 우리를 이해하는 인문학

역사 교육의 변화 필요성. 왠지 식상한 느낌이 든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들었던 아주 오래된 문구. 이 반복된 주제를 지금 또 이야기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글을 써본들 누군가는 이 문구 참 식상하다고 지금의 나처럼 또 이야기할 텐데’라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한다. 그러나 문구는 반복되더라도 학창 시절 배웠던 역사 교육보다 지금의 역사 교육이 그대로 좀 더 나아졌다고 믿고 있기에, 같은 문구지만 다른 성장의 의미가 담길 것이라는 희망 한 가닥을 부여잡고 글을 시작한다.

역사라는 과목은 어떤 과목일까? 많은 사람이 역사는 사실을 암기해서 시험 문제를 푸는 과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창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문제를 풀며 점수를 얻기 위해 외웠던 경험이 전부이기에 그렇게 규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역사라는 과목은 사실을 암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과목이다.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과목.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서 내 옆에 있는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과목. 그렇다. 말 그대로 역사는 나와 우리를 이해하는 인문학이다.

그래서 감히 제안한다. 인문학 본질에 충실한 역사 교육,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역사 교육이 됐으면 한다.

스러져가는 조국을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했던 양기탁. 한국사 수업에서 그의 '이름'이 아닌, 동사의 꿈을 꾸었던 '사람 양기탁'의 '삶'이 다루어진 적이 있었는가?

사람을 만나는 장

한국사 수업 한 장면을 만나보자. 근대사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가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대한매일신보를 강조하며 말하는 시간. 시험에 자주 나오는 주제이기에 사실 전달은 매우 중요하다. 베델과 양기탁이 운영했으며, 외국인 베델의 치외법권을 활용해 일본으로부터 언론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강력한 반일 논조의 기사를 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배운다. 국채보상운동의 확산에도 기여했으며, 을사늑약에 반발하는 장지연의 ‘오늘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황성신문의 사설을 영문으로 번역해 보도했다는 사실도 공유한다. 끝. 그러고서는 무심하게 구한말 다른 문화 활동에 대한 언급으로 넘어간다.

묻고 싶다. 이 ‘사실’의 나열 과정에 과연 ‘사람’이 있었는가? 이 과정에서 ‘나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지점이 있었나?

양기탁이라는 ‘사람’은 외국어를 잘하는 통역관리였다. 외세로서는 양기탁이라는 조선의 엘리트를 침탈의 선봉에 세운다면 너무나도 좋은 상황. 즉, 외국어를 잘하는 양기탁에게는 오히려 잘 먹고 잘살 기회가 온 상황. 그런데 놀라운 반전. 양기탁이 승승장구의 보증수표인 통역관리의 사표를 과감히 던지고, 외세의 침탈을 비판하는 언론인으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 이후 투옥, 유배, 탈출, 항일을 순환적으로 반복하며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자신의 ‘삶’으로 답했던 ‘사람 양기탁’. 이 이야기가 그 수업 시간에 공유됐는가?

대한민국 대부분 학생에게 꿈을 물어보면 판사, 변호사, 의사, CEO, 교사와 같은 ‘명사’의 답을 건조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명사’는 직업이다. 왜 대한민국 학생 대부분의 꿈은 직업일까? 왜 자신의 꿈에 대한 고민이 명사, 직업에서 멈추게 되는 것일까?

이렇게 멈추어버리면 우리는 삶 속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양기탁 선생의 꿈이 통역관, 직업, 명사에 머물렀다면 양기탁은 통역관 사표를 던질 이유가 없다. 왜? 그의 꿈은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그러나 양기탁의 꿈은 단 한 번도 명사, 직업이었던 적이 없었다. ‘통역관’이라는 명사, 직업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스러져가고 있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고민을 실천하는 꿈 즉, ‘동사’의 꿈을 꾸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거침없이 통역관이라는 직업을 내던지고 언론인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던 것이다.

역사 교육은 사실의 암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장이어야 한다. 그 사람을 만나면서 결국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에 답을 찾아나가는 시간이어야 한다. 명사의 꿈이 아닌 동사의 꿈을 자극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건강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감동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사람을 만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장치와 방법에 집중하는 역사 교육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