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갈등의 시대에서 가장 가까운 이를 이해하는 방법

노명우, <인생극장>

‘한지붕 세 가족’과 ‘전원일기’를 아는가? 내 삶의 일부처럼 기억나는 드라마들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일상이 마치 내 일상처럼 다가왔고, 그들이 내 이웃처럼 느껴졌다. 드라마, 영화, 광고, 대중가요는 우리들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잊고 지냈던 과거를 추억하는 참 좋은 도구이다.

글. 김현선(서울국제고등학교 교사)

보통 사람의 삶을 복원하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부모님의 자서전을 부모님을 대신해서 쓰기로 했다. 자서전을 쓰기 위해 아들은 그분들의 삶을 알려줄 자료를 수집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1924년생인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셨고, 1936년생 어머니는 암에 걸리셨다.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기는 어렵게 됐다. 더욱이 두 분은 문자 텍스트와 친숙하지 않은 삶을 사셨다. 평범한 많은 사람이 그랬듯. 두 분이 살았던 평범한 삶은 당시 신문이나 역사책이 알려주는 내용만으로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아들은 생각한다. 아들은 두 분의 삶을 담을 언어로 ‘대중문화’를 생각해냈다. 두 분의 삶을 담은 당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대중음악 등을 통해 아들은 부모님의 삶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대통령이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위대한 학자의 삶을 산 부모가 아닌 책 속에 등장하는 평범한 부모님의 이야기는 나를 포함해서 책을 읽는 많은 독자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범부(凡夫)의 역사를 범부(凡夫)의 언어로 함께 더듬어보는 일은 의미 있었다. 자식 세대가 잘 알지 못했던 부모의 젊음을 느껴보는 시간이면서, 가장 가까운 이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어머니를 인터뷰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는 기억이 나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삶을 털어놓았고, 아들은 열심히 들었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관계, 아니 그저 익숙하기만 했던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어머니라는 가족 호칭에 가려져 있던 한 여자의 인생을 묻고 답하는 관계로 변했다. 어머니의 병이 가져다준 놀라운 기회였다. 역시 인생은 예측불허임이 틀림없다.”

시대를 이루는 인생의 조각들

1939년 이익, 오카노 신이치 감독의 <국기 아래서 나는 죽으리>의 등장인물들은 제목처럼 국가를 위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됐다고 해도 상당 부분 당시 청중들의 공감을 얻었다면 사실에 부응하는 부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작가 박완서는 비슷한 시기에 자신이 다닌 학교의 풍경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박완서가 다니던 학교 초입에 ‘호안덴’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호안덴’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혀 절(최경례)을 해야 했다고 한다. ‘호안덴’은 천황의 칙서를 모셔놓은 작은 집으로 습관처럼 절을 하며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당시의 폭력적인 헤게모니를 체득했을 것이다. 그 시절 청소년기를 보낸 분들이 국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지금의 젊은이들과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대중가요에는 ‘양공주’가 자주 등장한다. 1953년 1인당 GDP가 57달러, 1960년에는 79달러였는데 미군 사병 월급이 120달러였다고 한다. 양공주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양공주는 드러내놓고 고마워한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늘 속에 그녀들을 가두어두고 사람들은 그녀들의 존재를 잊고 싶어 했다. 1954년 대중가요 ‘에레나가 된 순희’, 영화 <오발탄> 등 많은 작품에서 그녀들은 슬픈 모습으로 등장한다.

1960년대는 아무래도 전쟁, 미군이 사람들 인식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의 승리자인 미군을 대상으로 건축된 워커힐 호텔은 5개의 개별 호텔 이름도 더글러스 맥아더, 매튜 리지웨이, 맥스웰 테일러, 라이먼 렘니처, 제임스 밴플리트 등 미8군 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한다. 작가의 부모님 세대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늘 전쟁을 인지하며 살았던 세대다. 영화 <JSA>나 <웰컴 투 동막골>로 전쟁을 이야기하는 세대와는 다소간의 간격이 존재한다. 관점의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다름의 인정 차원’에서 우리들은 세대 간의 차이를 인지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고교 얄개>는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해도 자주 언급되어, 나도 제목이 익숙한 영화이다. 이 영화 속 학교는 ‘삶을 전과 후로 바꾸어놓는 마법을 기대하는 인내의 공간이었고, 자신의 세대가 기억하는 절대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를 줄 믿음의 공간’이었으며, ‘누구나 노력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화’를 제시하는 곳이었다. 하여 미래는 언제나 밝았다. 당대 사람들이 인식하는 학교가 그러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담당하는 역할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에 적어도 지금의 학교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기회를 주는 공간은 아니다. 학교는 과거와는 다른 비전을 담아, 비전에 맞는 평가 기준과 내용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음에도 과거의 ‘능력주의’, ‘성과주의’, ‘줄 세우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 ‘민주 시민 양성’ 등의 아름다운, 꼭 필요한 언어들이 교육 현장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글을 마무리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평생을 그저 자신의 기구한 팔자라고만 생각했던 인생의 굴곡 뒤에 커다란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아들은 최선을 다했다. 글자 하나하나를 모아 부모의 인생을 텍스트로 옮기는 시간은 나에게 산티아고 못지않은 치유의 순례길이었다.” 글을 읽으며 국어교사인 나는 학생들과 함께 그 ‘치유의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작가처럼 학생들에게 그들 부모의 인생을 더듬어보게 하고 글로 표현해보는 활동을 해보게 하고 싶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학생들은 부모를 자신과의 관계만이 아닌 독립된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자신과 다른, 부모 세대 인식의 배경을 알게 되지 않을까? 나아가 인식의 갈등을 어쩔 수 없는 벽이 아니라 차이의 인식을 통해 소통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이 책이 그랬다. 알고 있었으나 엮어내지 못해 인식하지 못했던 진실들을 조용하고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내 부모에 대해서, 범부가 살아낸 평범하고 보편적인 인생에 대해서, 그 위대함에 대해서, 역시 내가 엮어가고 있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서.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 사회에 몸을 담으면서 체득하게 된 인식들이 나의 고유한 생각이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이듯이 나와 다른 상황, 다른 시대에 몸담았던 이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얘기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조금씩 내려놓고 이해하기. 갈등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인생극장

노명우 저 | 사계절 펴냄

가족 이외에는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평범한 개인의 삶은 어떻게 복원될 수 있을까? 사회학자 노명우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의 자서전을 대신 썼다. 저자는 식민지배,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산업화 등 현대사의 큰 줄기가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면밀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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