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완벽하게 아름답고 가치 있는 ‘닫힌 세상’ 속의 교육

미국 영화 <캡틴 판타스틱>

캐시는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히피다.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가치라 여기고, 물질만능주의와 소비과잉시대를 경계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삶의 태도를 독특한 교육방식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 방식이 지나치게 ‘닫힌’ 방식이라는 점이다.

글. 이중기 / 사진제공. 더 쿱

이상적인 세계 속의 교육이 존재한다?

영화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시부족으로 보이는 남자가 칼로 사슴을 사냥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놀람도 잠시, 남자 주변으로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놀랍게도 그들은 우리와 현시대를 공유하고 살고 있는 문명인들이다.

이들은 산속에서 문명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이다. 자연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낸 것들로 집을 짓고, 먹을 것을 만들고 입을 것을 만든다. 일과 대부분을 먹고 입고 자기 위한 것을 얻는 데 사용하며, 남는 시간은 사냥 훈련을 하거나, 유용한 식물학 지식을 공부하거나, 명상 등을 하며 지낸다. 밤이 되면 인문교양서적을 탐독하는 시간도 가진다. 자체적으로 독서를 하고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언뜻 완벽한 듯 보인다.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얻고 삶에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배운다. 대학자, 대작가의 작품을 섭렵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완벽한 듯 보이는 캐시 가족에겐 몇 가지 균열이 있다. 조울증에 걸려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엄마, 아빠인 캐시의 교육철학에 따라야 하지만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장남. 그리고 캐시 가족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 넌덜머리가 난 친척들까지. 플라톤이 말하던 ‘이데아’를 건설했다고 자부하는 캐시는 이런 균열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넘겨버린다. 하지만 아내 레슬리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캐시의 세계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완벽한 세계에 벌어지는 균열

아내의 장례식에 찾아가려는 캐시네 가족. 그러나 처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이에 체념한 캐시는 슬퍼하는 아이들에게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말에 쉽게 수긍할 리가 없다. 이윽고 레슬리의 장례식날. 아이들은 장례식에 갈 채비를 마쳤지만, 캐시는 평소처럼 암벽등반 훈련을 강행한다. 비가 내리기 직전의 습한 날씨 때문에 렐리안은 손을 놓치고, 로프 덕분에 절벽 아래로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손목을 다치고 만다. 하지만 캐시는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오라고 다그칠 뿐이다. 렐리안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가까스로 다시 절벽을 붙잡는다. 그리고 며칠 후 렐리안은 가족을 떠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외갓집으로 찾아간다.

렐리안을 되찾기 위해 늦은 밤 장녀 베스퍼를 몰래 침입시키는 캐시. 지붕 위를 날래게 움직이던 베스퍼는 그만 2층 건물 위에서 떨어지고 만다. 천만다행으로 가벼운 뇌진탕에 그쳤지만, 자칫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던 사고. 그제야 캐시가 이룩한 이데아는 깨지고 냉랭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이 스치기 시작한다.

완벽한 교육은 애초에 없다

히피 문화를 추앙하는 캐시와 레슬리는 특별한 자녀계획 없이 6명의 아이를 낳았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큰 골프장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함께라면 큰 불편 없이 자랄 터였다. 딸의 자식들을 모두 거두어 키우려는 장인과 장모의 바람에 콧방귀도 뀌지 않던 캐시는 베스퍼의 사고 이후 자신의 교육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먹을 만큼 자연에서 얻는 방법,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 다른 의견이 있다면 토론으로 해결하는 방법 등은 비단 캐시만의 ‘이데아’가 아니다. 우리 교육 또한 저런 미덕들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과 캐시의 교육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혹자는 울타리의 유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공교육과 홈스쿨링, 교과서와 현장체험, 암기보다 느끼는 것 등 우리는 흔히 이상적인 교육의 키워드로 후자의 것들을 꼽곤 한다. 오롯이 후자의 가치들만 뽑아낸 캐시의 교육은 왜 실패로 귀결됐을까? 캐시의 교육에는 교과서나 학교 같은 울타리도 없었는데 말이다.

실은 캐시의 교육에도 울타리가 존재했다. 기성의 교육은 물론 사회, 체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정한 울타리 밖의 것들은 열등한 것, 추한 것, 해로운 것으로 규정 짓고 아이들에게 비판적 관점만 가지길 강요했다. 아이들은 바깥세상의 모든 것을 ‘자본주의의 천박함’으로 이해했다. 있어 보이는 단어들로 바깥세상이 왜 천박한지 설명하지만 그리고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마치 교조주의 같은 모습을 보인다.

캐시는 학교와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이들이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었지만 그 반대였다. 그렇다면 캐시의 교육은 완전히 실패한 교육일까? 그런 극단주의를 경계하자는 것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미덕이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고, 양면을 잇는 중간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는 극적으로 갈등을 봉합한 캐시와 아이들이 전원마을에 정착하는 것으로 끝난다. 캐시의 교육철학 중 가져가야 할 좋은 미덕들은 남기고, 아이들을 별난 세계의 괴물로 만들지 않을 사회와의 접점을 찾아낸 것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자연친화적이고, 박학다식하고,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학교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내가 모르는 세계와 매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고대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벽을 두르지 않고 도시를 촘촘히 잇는 가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우리에겐 울타리보단 다른 세계와의 접점을 만드는 가도가 더 필요하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닫힌 세계 속의 교육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다. 교실과 학교가 열리고 학교 밖 청소년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학교와 학교 너머는 서로의 안티테제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유기적인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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