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수리학교 사용설명서

글. 박찬익(서울수리초등학교 교감)

여름 방학이 시작된 월요일 아침. 나는 평상시처럼 일찍 출근했다. 당직 선생님 외에 세 분의 팀장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학 전 못다 한 일을 하러 오신 거라 지레짐작하며 인사를 건넸다. 내심 오늘 조용히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다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방학인데 왜 나오셨어요? 쉬시지 않고.”

그런데 1팀장님의 답변에 가슴이 확 트였다.

“<수리학교 사용설명서> 만들려고요.”

그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했다. 나는 세 팀장님의 옆자리에 앉아 일명 <수리학교 사용설명서> 제작 프로젝트에 관한 자초지종을 들었다.

2017년 겨울, 2018학년도 부장 희망서를 받은 결과 9명의 부장이 필요한데 부장을 하겠다고 희망한 분이 3명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겨울 방학식 날 퇴근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소통마당이 열렸다. 열띤 토론 끝에 2018학년도 부장 임용안이 완성됐다. 이때 3팀장님의 머릿속에 누구나 쉽게 걱정 없이 부장을 할 수 있도록 업무 매뉴얼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학기 초에 1팀장님과 2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하셨단다. 특히 올해 우리 학교에 부임한 1팀장님이 더욱 반기셨다고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업무를 하는 중간 중간에 전근 가신 전임 부장님께 몇 번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무능해 보이기도 했고, 전임 부장님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교무부장을 하면서 교무업무일지 양식을 만들어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다달이 해야 하는 일을 기록하고 업무 파일은 폴더를 만들어 보관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정리해놓으니 다음 해부터는 수월하게 업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부장님들께도 이런 의견을 말씀드렸더니 이구동성으로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하며 양식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작성한 부서별, 학년별 업무 매뉴얼을 파일로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교감으로서 3팀장님에게 고마움과 함께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수리학교 사용설명서>에는 부서별·학년별 업무 매뉴얼, 부록으로 학교 규정과 시설 및 기타 안내 사항이 담긴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내년 우리 학교에 부임하는 선생님이 학교에 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방학 중에 학교에 나와서 일하는 팀장님 세 분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면서 내 머릿속에는 내년 2월에 나올 때깔 나는 <수리학교 사용설명서>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런 교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도 여기에 적극 동참하고 널리 전파되도록 전도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 내일부터 동네방네 소문나게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널리 행복 바이러스가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너와 내가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학교 분위기 조성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겠다.

1994년 이후 가장 무더웠던 2018년의 불타는 여름도 이제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며칠 전부터 불어온 선선한 가을바람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살며시 들어온다. 곧 있으면 개학과 더불어 아이들은 등교하고, 교직원은 출근할 것이다. 모두 모두 빨리 보고 싶어진다. 왠지 개학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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