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인간에 대해, 국가에 대해 묻는다

한강, <소년이 온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 역시 오늘이 있기까지 크고 작은 희생이 있었다. 1980년 광주에서도 그랬다. 38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매년 5월이 되면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잊지 않기 위해서다.

글. 조정옥(서울문교초등학교 학부모)

페이지를 넘길수록 아팠던 소설

끊임없이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묻고 묻는다. 사람이(인간이) 어떻게 잔인하게 그래요?라는 물음에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답한다. 그럼 어떻게 죽을 줄 알면서도 끝까지 남아 맨몸으로 저항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 역시 양심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 사람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한 소설이 바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다.

작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을 안아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이게 국가지…’라고 혼자고 되뇌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 광주라는 한 도시가 독재정권에 의해 비참하게 인권유린을 당한 비극적인 현장과 시간. 이 소설은 친구 정대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소년 동호가 끝까지 도청에 남아 목숨 걸고 이 땅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처절했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동호와 함께 도청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그날 이후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히고 빼앗긴 지금의 모습으로 아프게 말하고 있다.

조사실에서 방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정좌를 하고 정면의 철장을 똑바로 바라봐야 했습니다. 눈동자만 움직여도 담뱃불로 지져버리겠다고 한 하사가 말했고, 본보기 삼아 실제로 한 중년 남자의 눈꺼풀을 담뱃불로 문질렀습니다. 무심코 손을 움직여 얼굴을 만진 고등학생을,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질 때까지 때리고 밟았습니다. 좁은 공간에 백 명 가까운 남자들이 빈 공간 없이 앉아 있었으므로,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이 흘렀습니다. 목덜미를 스멀스멀 기어 내려가는 것이 땀인지 벌레인지 구별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땀을 흘린 만큼 목이 탔지만, 물을 마실 수 있는 건 하루 세 번 식사 때뿐이었습니다. 오줌이라도 받아 마시고 싶었던 동물적인 갈증을 기억합니다. 갑자기 졸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 그들이 언제든 다가와 내 눈꺼풀에 담뱃불을 문지를 거라는 공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배고픔을 기억합니다. -본문 중에서

인간의 숭고함과 잔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총을 받고도 쳐들어오는 군인들을 향해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어 죽어간 시민군들과 시민들을 죽일 수 없어 하늘을 향해 총을 쐈다는 계엄군들이 있는 반면, 이유 없이 보이는 대로 총을 쏘고 무고한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가슴을 도려내고,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그것도 열네댓밖에 되지 않는 소년들에게 무참하게 총을 쏴대는 군인들이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라는 말 앞에 그래서 인간이라고…. 인간이라는 말에 담긴 모순이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된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지고 본인마저 안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험과 생각들. 책 속에서 그날 고통스럽게 살아남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은 본질입니까?’ 이 질문에 나는, 우리는 어떠한 답을 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소설은 슬프다

5월의 광주를 이만큼 마음 아프게 다가오게 하는 소설도 없는 듯하다. 공선옥도 임철우도 광주를 말했지만, 또 다르게 다가오는 80년 광주. 어쩌면 80년대 광주가 그만큼 엄중하고 참혹했기 때문에 언어로 나타나는 모든 ‘광주’가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 80년 광주는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치유받지 못한 광주는 여전히 아프다.

계엄군이 광주를 휩쓴, 이틀여의 시간을 다룬 이 소설은 그 시간이 현재까지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과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현실 곳곳에서 목격한다. 그리고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현재에도 잔존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국가란 무엇인지, 양심이라는 말, 영혼이라는 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도 되는 건가라는 질문도 함께 말이다. 국가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학살. 5·18은 광주시민 아니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입장에선 학살이고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처음 광주를 알게 된 내가 가장 먼저 마음으로 다짐했던 일이 그날의 광주를 잊지 말자, 기억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 역사를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했다. 다시는 이 땅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함께 건강하게 성장하고, 우리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고, 부당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때는 맞서고 바로잡고 온몸으로 저항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책을 덮고 나서 ‘동호’라는 이름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동호라는 소년, 눈을 떼면 잊혀버릴 평범하고 평범하다는 얼굴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날 그 비참한 일이 광주에서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많은 선한 얼굴들. 그 얼굴들이 떠올라 한동안 가슴이 먹먹한 시간을 보냈다.

책 속에서 작가는 말한다. “저항하며 죽어간 사람들을 희생자라고 말하지 말라. 그때 도청에 남아 있던 이들은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모인 것이다”라는 말. 그들은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한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날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인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 이게 국가다.

소년이 온다

한강 저 | 창비 펴냄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저자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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