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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진짜로 누가 만들었을까?

한글의 창제 주체 바로 알기

오늘 10월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72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원리를 만든 이는 누구일까.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 당연하게 여겼던 사실이지만, 조금만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면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왜 우리는 한글의 창제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할까?

글. 이건범(작가,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 서문, 강병인, 2018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질문?

한글은 진짜로 누가 만들었을까? 이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란 말인가, 한글을 누가 만들었냐니…. 어린 애들까지 다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 말이다. 그런데 한글의 글자와 원리를 직접 만든 이가 누구냐는 구체적 질문으로 들어가면 답은 세 가지로 갈린다.

1) 세종이 몸소 만들었다.
2) 세종이 지시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
3)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

너무 뻔해 보이지만, 교실 안에서,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조사해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 ‘뻔한’ 결과는 과연 당신의 예상과 같을까, 다를까? 같다면 그 예상은 정답일까?

나는 “언어는 인권이다”라고 주장해왔는데,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언어 인권 정신은 600년 전 세종의 애민 정신과 닿아 있고, 애민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건이 바로 한글 창제다. 세종 당시의 이름은 훈민정음. 한글을 만든 원리와 사용 방법을 담은 설명서의 제목 또한 <훈민정음>인데, 이 책 서문에 애민 정신을 대표하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여기서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는 ‘나’란 누구인가? 당연히 세종대왕이다. 그러면 1)번 ‘세종이 몸소 만들었다’가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싱겁다. 선뜻 받아들이기엔 뭔가 찜찜하다.

우리는 세종이 아무리 똑똑한들 그토록 위대하고 과학적인 발명을 혼자 해냈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정복 전쟁이건 대형 사업이건 왕은 지시만 하거나 나서더라도 최전선에서 일하지는 않으니, 임금에게 바치는 찬사 차원에서 이리 쓰게 된 것 아닐까?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놓았다지만, 직접 삽질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 조사하든 60~70%가 3)번, 즉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답을 낸다. 아주 냉정하게, 세종은 그저 지시만 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답하는 사람도 20~30% 나온다. 과감하게 1)번을 고르는 이가 10% 남짓. 어떤가? 당신의 예상과 일치하는지 궁금하다.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알자

세종의 기여도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더라도,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사업에 참여한 것은 사람들이 대개 알고 있다. 그러니 만든 공을 오로지 임금에게만 돌리는 것은 세종 우상화이고 세종을 욕심 많은 임금으로 몰아갈 위험마저 있다고 걱정하여 함께 만들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몰린다.

그러나, 2)와 3)을 찍은 90%가 ‘땡!’, 틀렸다. 훈민정음(한글)은 세종께서 눈병에 시달려가며 몸소 만들었고,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의 가르침과 지시를 받아 한글 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집필에 참여했다. 즉,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건 글자인 ‘훈민정음’이 아니라 제목이 ‘훈민정음’인 책이다. 흔히 ‘해례본’이라고 부르는 이 책의 ‘서문’ , 새 문자의 원리를 간추린 ‘예의’까지는 세종이 썼다. 그다음, 매우 상세하게 한글을 만든 철학과 음성학의 원리, 초성과 중성과 종성 글자의 특징과 자모를 합하는 원리 등을 풀이하고 예를 보이는 ‘정음 해례’는 세종의 지시에 따라 집현전 학자들이 쓴 것이다. 1446년에 한글을 반포하면서 낸 책 <훈민정음> 해례본 끝머리의 ‘정인지 서’에 이런 사정이 명백하고도 소상하게 나온다.

세종이 직접 한글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1443년 12월 <세종실록>에 처음 나오고, <동국정운>, <홍무정운역훈>, <직해동자습> 등에도 나오지만,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한글 창제 뒤에 사대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한글 반포를 반대했던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상소문이다. 거기에서 최만리는 “신 등이 엎디어 보건대, 언문을 만든 것이 매우 신기하고 기묘하여, 새 문자를 창조하시는 데 지혜를 발휘하신 것은 전에 없이 뛰어난 것입니다”라고 했다. 정치적 반대자의 증언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하지 않겠는가?

세종 시대의 모든 업적에는 장영실, 이천, 박연, 김종서 등 구체적으로 일을 실행한 저작권자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제풀에 세종을 남의 저작권이나 가로채는 파렴치한으로 오해하고, 조선의 엄격한 역사 기술이 유명함에도 유독 세종의 한글 창제 기록에만 예외를 두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한글의 위대함에 압도당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잘못 아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가르쳐왔다면 어쩔 것인가? 아,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교과서가 실제로 잘못되어 있고, 잘못 가르쳐왔다. 지금 쓰는 초등 5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훈민정음(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직접 만들어 반포하였으며…(143쪽)”라고 적혀 있다.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예전부터 창제 주체가 대부분 잘못됐거나 불분명했다. 심지어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독려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소개하는 교과서도 있다.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니 학생이건 어른이건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공동 창제로 아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한글에도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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