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일상의 원심력에서 벗어나 나만의 궤도를 유영하기

일본 영화 <골든 오케스트라!>

일상이라는 원심력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궤도에 재진입하기란 쉽지 않다. 편안한 공전에 함몰되다 보면 일상은 관성이 되기 마련. 여기 교사로서 삶에 무료함을 느끼는 수학 교사가 있다. 그리고 그 무료함을 타파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에 가입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케스트라에는 교실에서도 찾지 못한 관성을 깨부술 해답이 숨어 있었다.

글. 이중기 / 사진제공. (주)더블유에이지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던 교사, 지휘자가 되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소녀 코야마. 그녀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루진 못했다. 다른 어른들처럼 자신의 꿈을 ‘나중에’라는 서랍장에 고이 모셔두고 고등학교 수학 교사가 됐다. 영화는 코야마가 서랍장 속에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꿈을 다시 꺼내 들면서 시작된다.

코야마에게 내려온 한 줄기 동아줄은 지역 오케스트라에 단원으로 가입하는 것. 부임지인 우메가오카 지역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고 감명받은 코야마는 전화로 입단을 신청한다. 그런데 웬걸, 구두로 진행된 면접만으로도 덜컥 합격해버린 코야마. 하지만 첫 연습일 코야마는 단원들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단원 전원이 60대 이상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우메가오카 지역엔 오케스트라가 두 개 있었다. 코야마가 입단하려던 오케스트라는 우메가오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실제로 입단한 오케스트라는 우메가오카 교향악단(이하 우메교). 헛갈릴 법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우메교의 콘서트마스터 노노무라가 노환으로 입원하게 되자 코야마는 이 ‘실버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게 된다.

우메교 단원들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나이로 인해 호흡이 부족해 한 곡도 소화하기 벅찬 관악 파트 단원과 악보만 보고 지휘는 쳐다보지 않아 불협화음을 만드는 현악 파트 단원, 그리고 청력 약화로 자신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내고 있는지 모르는 타악 파트 단원까지. 총체적 난국 속에서 코야마는 자신의 현실을 자책한다.

나의 가르침을 복기해본 적 있나요?

영화를 다시 앞으로 되돌려 코야마의 수업 시간을 살펴보자. 본래 교사가 될 생각이 없었던 코야마. 더군다나 음악도 아닌 수학이라니 직무에 열정이 생길 리 만무하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코야마의 수업 모습은 평범함 그 자체다. 물론 모든 가르침이 특별해질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코야마의 가르침에는 아주 사소한 특별함도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가르침을 사유하는 나름의 방식, 교사로서 지녀야 할 신념 등과 같은 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봄직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코야마가 나쁜 교사는 아니다. 다만 수업 시간을 할당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직책’은 됐지만, 가르침에 대해 깊게 사유하고, 이를 실천하는 ‘교사로서의 삶’에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다.

코야마가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는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실이 아닌 오케스트라 연습장에서다. 우여곡절을 겪는 중 우메교에 고등학생 바이올리니스트가 입단한다. 코야마가 사정상 레슨을 빼먹은 날, 고등학생이 일일 지휘자가 되어 단원들을 가르쳤다. 그러자 단원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이 아닌가? “얼마 전에 왔던 친구는 뭘 어떻게 알려줬나요?”라는 코야마의 물음에 단원들이 던진 대답은 너무나 평범했다. “지휘하기 전에 피아노를 쳐줬어. 악보 같은 걸 미리 보지 않고 말이야. 피아노뿐만 아니야. 바이올린, 플루트도 미리 연주를 해줬지.”

코야마는 지금껏 항상 관성에 젖어 있었다. 학교에서나 연습실에서나 마찬가지였다. 교실에서는 수학 공식을 가르치기 위한 가장 안정적인 설명을 하나 골라 이를 수업으로 삼았다. 대부분 학생들은 이해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코야마는 이를 애써 무시했다. 수업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학생 잘못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부분 학생들은 잘 따라와 줬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상황이 더 열악했다. 모든 단원이 코야마의 지휘를 따라오지 못했다. 코야마는 고민한다. ‘왜 내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하는 걸까? 그들의 문제점은 뭘까?’라고. 하지만 코야마는 한 번도 학생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을뿐더러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직업으로서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새삼스러운 가치를 깨달은 코야마는 지휘 도중 혼절하고 만다.

그래서 교사는 어렵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은 실은 자신인 경우가 많다. 원인을 찾아 먼 길을 돌아 자신이 원인이라는 걸 깨닫는 오이디푸스처럼 그 과정은 힘들고 불편하며 인정하기 어려운 과정과 선택의 연속이다. 많은 철학자가 치열한 자기반성과 자기사유를 지녀야 한다고 역설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는 ‘교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교사로서 모든 순간이 드라마틱할 순 없다. 모든 가르침이 특별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지향점만큼은 자신의 사유와 철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코야마의 가르침에는 이것이 없었다. 혼절에서 깨어난 코야마는 이전의 코야마와는 다른 사람이 됐다. 가르침의 가치와 의미가 뼛속 깊이 새겨진 것이다.

교실 또한 오케스트라와 같다. 모든 학생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그 특색을 잘 살려 멋진 하모니를 만드는 건 지휘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호흡이 모자랄 수 있고, 누군가는 박자 감각이 부족할 수 있다. 먼발치에 서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과 호흡하고 함께 문제의 원인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을 함께 모아 하모니를 만들어낼 고민도 필요로 한다.

이런 해답을 매년 찾아야 하는 교사들은 참으로 어려운 직업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골든 오케스트라!>가 전하는 가치 또한 새삼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 교사들은 이런 생채기를 겪으며 교사가 되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도 이런 가치를 자꾸만 복기해야 하는 까닭은 일상이 가지고 있는 관성 때문이다. 관성적인 일상을 벗어나 삶의 주인이 되고, 내 가르침의 주인이 되는 것. 교사라는 직업은 그래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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