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학교 시민교육의 제도화를 바란다

글. 김원태(학교시민교육 전국네트워크 고문)

“시민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원하게끔 하는 데 있다.”

전 프랑스 교육부 장관 레옹 베라르가 1929년에 한 말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게끔 하는 데 있다”라는 말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 말은 EBS 지식채널-e의 ‘그 나라의 교과서’라는 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5분짜리 짧은 프로그램이지만 그 나라가 어린 시민들에게 ‘무엇을 원하게끔 하는데’ 어떻게 심혈을 기울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전 교육부 장관이었던 스티븐 트위그도 영국 시민교육 과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시민교육은 우리 교육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교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또 그래야 마땅하다. 이 교과는 도입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학교와 학생들로부터 유례없는 호응을 얻고 있다. 시민교육은 보다 포용력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포용력 있는 사회로 나가는 관문이라는 표현이 참 부럽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말을 앞세워 반공교육이나 통일교육,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해왔다. ‘포용력 있는 시민’으로 만들지도 못했고, 우리 어린 학교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게끔’ 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대부분 어른의 욕망 실현의 대리자처럼 보인다.

현 교육감의 이전 임기에는 ‘민주시민의 자질 육성’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더뎠다. 서울의 교육 분야에 민주주의가 흘러넘쳐야 한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모습을 항상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교육영역에서 담대하고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감행해야 한다.

착한 시민이나 좋은 시민이나 훌륭한 시민을 넘어선 적극적인 시민들만이 심사숙고하여 나라 살림살이에 참여하고 자신이 몫을 공유하며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민이 된다는 것은 타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더불어 행동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어린 시민들을 이런 적극적인 시민으로 이끌 수 있을까?

근래에는 여기저기에 ‘역량’이라는 표현이 넘쳐난다. 그러나 마음에 와 닿지도 않고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그냥 순우리말로 ‘학교 시민들의 삶의 힘’이라 표현하면 어떨까. 우리 학교 시민들이 어떤 삶의 힘을 가져야 미래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협업하고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힘은 어떤 방법으로 키워줄 수 있을까. 창의적인 능력과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토론하고 논쟁하는 시간을 제도화할 수는 없을까. 어린 시민들이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해결책을 토론하기에는 아직도 미성숙한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서울시교육청이 내놓기 바라는 것은 성급한 욕망일까. 모든 과목의 교사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잘 부탁한다고 하면 충분할까. 필요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프랑스와 영국 교육부 장관들이 말한 제도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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