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우리의 삶은 자유의지에서 비로소 피어난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제는 시대의 고민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동의하여 폐기했던 지난날의 알고리즘이 다시금 회귀하는 시대였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문화, 도덕,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였던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다시금 나침반의 북쪽을 잡아주는 안내서, 이 책은 그래서 지금도 읽어봄 직하다.

글. 오지연(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 주무관)

자유롭고 사랑하고 창조하는 삶을 향해

이 책의 질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저자의 대답이다.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삶과 죽음에 어떤 의미를 담을지는 오롯이 자유의지를 가진 나의 몫이다. 쇠귀 님의 조언대로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살핀 후 자신의 답을 찾아보자.

“어떤 청탁도 대가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마땅히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부끄럽고 책임을 져야 한다. 아껴주신 많은 분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그의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우리에게 다음 생은 없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다면 좋겠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의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보겠다. 형.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저자는 올해 7월 26일 지인을 이렇게 배웅했다.

더 좋은 곳은 어디인가? 삶은 여행이다. 삶은 나를 찾아 차가운 머리에서 따뜻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다. 멀고 험난해도 끝이 있어 아름다운 여정이다. 누군가의 예쁜 사랑으로 태어나 세상으로 떠나서 사람들과 만나고 우리 속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천당과 지옥은 신과 함께지만, 좋은 곳은 언제나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 우리는 건강한가? 외로워 어디서 온지도 모를 유행을 추종한다. 무기력증에 몸서리치며 가학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는 우울과 피학에 시달린다. 하는 일은 무의미하여 권태롭고, 답도 없는 의문에 괴롭다. 우리는 모두 언제나 어디에서든 서로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자유로우며 우리를 위한 창조적 기여에서 기쁨을 느끼고 싶다.

자유의지를 가진 삶으로 한 걸음 더

마음 가는 대로 몸이 바라는 대로 나의 본성에 맞게 나답게 살자. 나의 삶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면 수용할 수 있는가? 없다. 나는 나의 자아가 또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존재인가? 그렇다. 좋은 것이어도 나의 선택을 거쳐 좋은 것이 된다. 결국 삶을 향한 나의 태도가 핵심이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태양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듯이 인생에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정해진 시간이 닥친다. 삶은 지금 여기 펼쳐지는 과정이고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삶의 의미가 철학적 자아에서 오듯 죽음도 주체적 선택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내가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만큼만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노르웨이의 정비사 라몬 삼페드로는 나이 스물다섯에 해변절벽에서 떨어져 일곱 번째 경추가 부러진 후, 30년 동안 똑같은 하루를 살았다. 침대에 누운 채 잠을 자고, 책과 신문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창문으로 하늘을 내다봤다. 강제된 삶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가져다 둔 다량의 수면제를 먹었다. 죽음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 삶의 의미는 사랑하고 죽을 자유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채 삶을 지속했다. 양손의 힘이 빠지는 상황에서 시작됐다. 팔을 따라 어깨를 타고 올라가며 온몸의 근육은 위축된다. 결국은 숨 쉴 수 없게 된다. 50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의 이름은 스티븐 호킹이다. 그 또한 삶의 의미는 자신의 철학적 자아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서만 존재한다. 우리의 선택은 그 선택이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철학적 자아는 시작도 마지막도 자유 속에서만 피어날 수 있다. 누구에 의해 어디로부터 답이 주어지길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 자랑스럽게도 여기 지금 우리는 강요된 답을 거부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자연의 지시대로만 적응하고 만족하는 존재가 인간일 수 없다. 인간은 사회라는 감옥 속 죄수일 수 없고, 문화라는 틀에 맞추어 찍혀 나오는 복제품일 수도 없다. 뒤집고 끊어야 한다. 본래 나는 스스로 말미암아 선택하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쇠사슬을 끊고 뒤돌아 동굴 속 어두운 벽과 결별하고 열린 동굴 밖 밝은 햇살로 가자. 내 맘이 스스로 원하고 내 몸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는가.

우리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삶의 과정 구석구석 누구에겐가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는 경쟁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공동선을 위해 나누고 협력한다. 사회적 연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인류 역사는 이타적 내집단 확산의 과정이다.

좋은 것과 옳은 것은 자유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나 홀로 자유가 문제고 너만의 자유는 괴물이 된다. 나치즘의 도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착하고 근면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그가 선택하여 정당화한 홀로코스트는 인류 최악의 범죄가 되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우연적 재능과 행운에 따른 기회는 사회적 의미와 함께일 때 정당화된다. 나에게는 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이타적 배려가 있다. 우리 뇌에는 공감의 거울뉴런이 있다. 나는 사람 사이 인간이고 삶은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할 때는 함께 공유한 목표가 있다. 여럿이 놀아야 즐겁다. 어린 시절 즐거운 놀이에는 언제나 어깨동무들이 있었다.

산업화를 거쳐 풍요로워지고 민주화를 거쳐 독재는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각자 도생에 맡겨졌다. 생존 경쟁의 장에서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괴롭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과속은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조금만 손해가 나도 예민하다. 희생과 배려는 희화화되고 특권과 반칙에도 무덤덤하다.

강물은 흘러 가장 낮은 바다로 간다. 대나무는 서로와 땅속에서 단단히 얽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미다스의 황금과 진시황의 권력으로도 진정한 사랑은 결코 얻을 수 없다. 사랑은 내가 동의한 너의 자유에 있고, 너와 내가 목적이 될 때 오직 꽃피울 수 있을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누구의 답도 답이 될 수 없다. 스스로 찾은 답만이 답이다. 진정 질문을 던져야 할 대상은 세상의 주인인 바로 자신이다.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스스로 찾은 답이 내게 의미가 있다. 이 책과 함께 질문해보자.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저 | 생각의길 펴냄

유시민이 정치시장을 떠나 지식시장으로 복귀하여 내놓은 첫 책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여러 관념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찬찬히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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