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소통이라는 호밀밭에서 파수꾼이 되어

한국 영화 <파수꾼>

기태의 아버지는 지친 몸을 일으켰다. 밤새 한숨도 못 잤을 터였다. 오늘은 가게에 가서 휴업 딱지를 붙이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을 만나뵐 예정이다. 기태 아버지의 얼굴에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고민의 무게가 어려 있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글. 이중기 / 사진제공. CJ CGV

우리 사이 간극은 왜 좁혀지지 않을까

기태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은 비교적 영화 초반에 밝혀진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기태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던지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기태가 그런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공백에 대해 기태의 아버지는 전혀 모르고 있던 터였다. 일찍 아내를 잃고 혼자 기태를 키워온 아버지였기에 기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기태가 떠나기 전의 과정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답답함이 컸다. 그렇게 기태의 아버지는 기태가 떠나기 전에 만났던 친구들을 수소문해가며 만나기 시작한다.

영화의 시간은 기태 친구들의 회상 속으로 들어선다. 동윤과 벡키(희준)와 친했던 기태.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세 친구의 우정은 사소한 계기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벡키가 좋아하던 학생이 실은 기태를 좋아했던 것. 난처한 상황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려 했던 마음이 컸던 둘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오해는 싹트고 그렇게 싹튼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거친 표현과 욕설들이 난처한 상황 속에서는 묵직한 무게가 실려 상대방에게 전달됐고, 소위 ‘센 척’하느라 빙빙 돌려 표현했던 마음은 본심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궤도 밖으로 이탈해버린다. 수많은 대화를 나눔에도 불구하고 기태와 벡키의 관계는 다시 예전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같은 항구에서 출항한 배라도 지향점이 서로 0.1도만 달라져도 항해 끝에는 서로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듯이 둘의 관계가 회복되기란 요원해 보인다.

결국 소통의 문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를 보호할 수단으로 거친 표현과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특히 기태는 그 정도가 가장 심하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벡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가 하면, 동윤에게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동윤의 여자친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주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인물 기태는 다른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장 큰 상흔을 남긴다. 그러나 이는 아이러니가 아니다. 거친 표현과 물리적인 폭력은 1차적으론 상대방을 해하고, 2차적으로 자신을 해하게 된다. 거친 표현은 표현을 거듭할수록 더욱 거칠어지지 않을 수 없으며, 폭력은 맞는 자에게는 신체적인 상흔을, 때리는 자에게는 정신적인 상흔을 남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영화 <파수꾼>이 개봉됐을 때 받은 수많은 호평은 고등학생들의 거칠고 투박하지만 실은 섬세한 감정들을 오롯이 담아낸 부분에서 비롯됐다. 작은 오해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에서 학창시절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이야기다. 왜 우린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같은 시행착오를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는 걸까? 이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고 유년시절을 졸업함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 간과하고 있다. 바로 소통의 문제다.

우리 모두 파수꾼이 되어

모든 문제가 진심을 터놓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을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리는 어려운 문제들도 많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 둘만의 문제가 아닌 제3자 또는 어른이나 선생님이 개입해야 하는 문제도 적잖이 발생한다. 영화는 이러한 문제의 해답을 제목으로 은유한다.

<파수꾼>이라는 제목은 누가 봐도 J. D. 샐린저의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따온 것이다. 주인공 콜필드는 긴 방황 끝에 자신의 동생 P.B에게 전하는 편지에 자신의 꿈을 적는다. “아이들이 뛰어놀다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콜필드는 긴 방황 끝에 자신과 같이 방황하는 아이들을 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는 우리가 콜필드가 되어야 할 차례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호밀밭 밑으로 떨어져 다쳤지만, 지금 학생들도 이를 대물림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대치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긴 생의 주기에서 언어를 ‘이제 막’ 사용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서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제법 어른처럼 말을 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소통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예의’의 문제로만 치환해버렸다. 지금이라도 돌이켜볼 때다. 우리 학생들이 소통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파수꾼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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