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나눔, 참 아름다운 삶!

글. 송경용((사)나눔과 미래 이사장, 신부)

<나눔, 참 아름다운 삶>은 27년 전 봉천동 산동네에서 시작한 ‘봉천동 나눔의 집’의 소식지 제목이다. 이 제목을 붙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우리의 삶은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 넓고도 깊게 파여 있는 사람들 간의 경제적, 사회적 골은 어떻게 메워질 수 있는가?

나부터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기 전에 나부터, 나 자신의 문제부터 시작한다면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 성인, 현인이 그러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해월 선생님도, 성 프란시스도 그랬다. 세상을 향하기 전에 이분들은 자신부터 비워냈다. 가벼운 몸으로, 비워진 마음으로 길을 나섰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곁에 머물 수 있었고, 너른 가슴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었다.

나눔은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질을 나누어주는 게 시급하고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지만, 나눔은 그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나눔은 불평등과 차별, 소외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한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자 대안을 만들어내려는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이기적 욕망이 충돌하는 장이며 그 안에서 무한경쟁을 통해 더 많이 가지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는,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시장논리에 저항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동시에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더 많이 나누는 삶이 더 행복한 삶이고 사회라는 것을, 나눌수록 더 크고 더 넓고 더 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을 증명하려는 대안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사람은 많이 가지려 할수록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는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은 나눔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지각하고 더 많은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 밥 한 그릇에도 바람과 햇살과 수많은 농부의 수고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빵 한 조각을 먹을 때에도 우리는 저 멀리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농부들, 그들의 꿈과 땀, 슬픔과 기쁨, 소망과 연결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관계와 관계로 연결된 세상’의 현실이다. 나눔은 타인의 긴급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한 개체로서, 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서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며, 이를 통해 내 존재의 의미를 넓고 깊게 확장해가는 일이다.

1980~90년대 당시 봉천동 산동네 사람들은 너나없이 가난했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다. 좁고 비탈진 골목에서 함께 김치를 담그고, 마늘 까기, 인형에 솜 넣기, 전자제품 부속 끼우기 등의 부업도 함께 했다. 여름에는 폭우에 집이 무너지고 겨울에는 폭설에 나다닐 수도 없고 수도와 연탄보일러가 다 얼어붙어 추위에 떨었지만, 다 같은 형편임에도 서로 먼저 나서서 집을 고쳐주고 따뜻한 물과 국물을 나눴다.

나는 1970년대부터 이런 분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외롭다’라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사회적으로 잘나간다는 분들의 세계에서 더욱 큰 이질감, 단절,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누추한 환경이었지만, 산동네 좁고 비탈진 골목의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서로의 삶에 대해 잘 알았고, 연탄불이 꺼졌을 때 자신의 연탄불을 가져다주는 이웃이 있었다. 최근 OECD에서 ‘내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이웃이 있는가?’에 대해 조사한 바가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거의 꼴찌였다. 서구사회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우리는 전통적으로 ‘공동체성’이 강한 사회라고 생각해온 관념을 뒤집는 조사결과였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분열되어 있고, 우리 각자가 고립되어 있다는 증거다.

최근 방임, 학대, 빈곤 문제로 가출한 청소년들을 위해 설립한 청소년 쉼터와 IMF 외환위기 당시 노숙가족을 위해 설립한 ‘살림터’라는 가족 공동체 시설이 각각 20주년을 맞이했다. 20년 전 이 시설을 설립하면서 20년 후에 이런 쉼터와 시설에 의존해야 하는 청소년, 가족들이 더욱 넘쳐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론적으로는 소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사회가 더 분열되면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는 예측했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망’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더욱 커지고 깊어졌다. 청소년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은퇴한 중년·노년의 인생도 모두 힘든 세상이다. 심지어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절대적인 부의 양은 20여 년 전보다 몇 배가 커졌는데 삶의 질은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각자도생이라는 무망한 질주 탓이라고 생각한다. 나누고 연결되어야 한다. 권력도, 부도, 학식도, 지혜도 나누어야 한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방식으로 제도와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삶도 전환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지탱해주는 나눔과 연결 안에서 내 삶이 더욱 커지고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부터 내가 가진 것을 내어놓을 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먹고도 남는 ‘나눔의 기적’이 일어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사회 안에서 우리는 더욱 행복해질 수 있고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

행복지수 1위라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간단하게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가,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행한다고 한다. 이 단순성(simplicity)의 힘이 상대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행복한 사회, 행복한 나라, 행복한 삶을 만드는 비결이라고 한다. 코스타리카 사회정책과 교육의 목적은 ‘nobody left behind’라고 한다. 아무도 뒤처지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혼자 가기보다는 조금 늦어도 상대를 배려하면서, 서로를 연결하면서 함께 가겠다는 정신, 이런 나눔의 정신을 교육과 복지, 의료, 교통 등 모든 사회정책에 그대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나라, 우리도 이런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눔, 참 아름다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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