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교육과 빈곤 29년의 간극 속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영화 <수업료>와 1969년도 영화 <수학여행>

교육과 빈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사회가 교육을 만듦과 동시에 빈곤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가 이 문제에 달려들었지만 명쾌한 해답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누구도 들은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29년의 간극을 두고 같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작가들이 있다. 29년의 시간은 교육과 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변화시켜왔을까?

글. 이중기 / 사진제공. 한국영상자료원

1940년 경기도 수원과 1969년 전라북도 선유도

일제강점기 시절 경기도 수원.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11살 소학생 영달이는 내일 학교 갈 생각에 걱정이 많다.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이번 달 수업료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여윳돈이 생기면 몇 달 치가 밀린 월세를 먼저 내야 하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행상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소식은 뚝 끊긴 지 오래다. 간간이 보내주던 생활비마저 끊기고 나니 당장 먹을 쌀마저 떨어졌다. 병환에 몸져누운 할머니는 영달을 앉히고 이렇게 이른다. “평택 아주머니께 가봐라. 그분이 네 월사금(수업료) 정도는 해주실 게다”라고.

1960년대 후반 군산 앞바다 선유도의 작은 시골 분교. 서울에서 교사를 하던 김선행 선생님은 자진하여 낙도로 부임한다. 열정을 갖고 시작한 낙도에서의 교직 생활,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바퀴의 작동원리에 대해 가르치던 김선행 선생님은 아이들이 작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선유도엔 자전거는커녕 흔한 달구지 하나 없단다. 김선행 선생님은 고민에 빠진다. 열악한 교육현실에서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선 무슨 노력이 필요할까? 선생님의 머리를 스친 건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장 내일 먹을 끼니 걱정으로 살아가는 섬 주민들에게 수학여행은 언감생심이나 다름없다. 부모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아이들은 갯벌에 나가 갯지렁이를 캐고, 돈사에서 돼지를 키워 내다 팔 계획을 세운다. 과연 선생님과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까?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일본인은 필요 없어

두 영화는 각각 1940년과 1969년 개봉되어 당시 흥행몰이를 했던 작품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작품이 가진 시선은 놀라우리만큼 닮았다.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줄어들었지만,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관통한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었다. 당시엔 피폐하고 궁핍한 사람들의 민낯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이를 스크린으로 선보이는 게 지식인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덕목처럼 여겨졌다. <수업료>와 <수학여행>도 그러한 ‘리얼리즘’ 사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두 작품이 주목한 사회의 병리는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빈곤이다. 1940년 작인 <수업료>와 29년이란 간극을 두고 있음에도 1969년 작 <수학여행> 또한 빈곤이 여전히 사회의 문제라 이야기한다. 물론 두 작품이 그리는 빈곤의 결은 조금 다르다.

일제강점기를 시대배경으로 삼는 <수업료> 속 영달의 가족은 수원 화성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오랜 가난으로 화성은 허물어지고, 제대로 구색 갖춘 초가집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대다. 흥미로운 지점은 빈곤을 나누는 기준이 ‘언어’가 된다는 점이다. 극 중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은 일본어가 능숙하다. 반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일본어를 하지 못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영달이의 할머니 문병을 위해 일본인 교사가 찾아왔을 때 일이다. 일본인 교사는 영달의 할머니에게 문병을 왔지만 정작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대화를 잇는 사람은 바로 영달이 친구의 누나. 우리말과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윤택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꼬질꼬질한 옷들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고운 한복을 차려입었으니 더욱 눈에 띈다. 밑창이 떨어져 나갈 듯 위태위태한 신발을 신고 수원에서 평택까지 걸어가야 하는 영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일본어’는 지배계급의 언어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도 당연히 ‘일본어만을’ 배운다. 교사가 칠판에 한반도와 일본 제도를 나란히 그리고 ‘하나의 나라’라고 설명해도 아이들은 위화감 없이 받아들인다. 일본과 조선은 한 나라이고, 이를 대표하는 언어는 일본어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으로 살기 위해선 일본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교실 장면만 보면 이 세계는 완벽한 내선일체를 이룬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하교 후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떠들기 시작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뿐만이 아니다. 집에서도, 동네 웃어른을 만나도, ‘점빵’에 들러서도 모두 우리말로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어를 못해서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1940년대 일본은 문화 말살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지배계급에만 국한됐던 창씨개명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강압했던 시기가 바로 이즈음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아이들이 우리말로 대화하는 모습은 당시 기준으로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된다. ‘조선인은 조선말로 이야기한다’라는 당연한 전제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최인규는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이다. 노골적인 친일영화를 여럿 찍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최인규의 작품 중에 <수업료>는 유독 튀는 작품이다. 극중에서 일본인은 선량하게 나오지만 문제 해결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영달과 그 주변을 아우르는 문제를 해결하는 건 영달과 그를 둘러싼 조선인들이다. 수업료를 마련하는 것도, 밀린 집세를 마련하는 것도 조선인들은 서로 돕고 이끈다. 조선인들은 협력심이 약해 쉽게 반목한다는 이야기를 은연중에 퍼트리고 다니던 일제의 프로파간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사실 <수업료>의 원안은 경일소학생신문사(京日小學生新聞社)에서 모집한 소년 수기 부문 ‘조선총독상 학무국장상’에 당선된 우수영이라는 학생의 작품이다. 이를 일본인 극작가 야기 야스타로가 각색했고, 최인규가 메가폰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선 친일의 채취보다 민족결집의 풍미가 더 짙게 느껴지는 까닭은 왜일까?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영달이 평택의 아주머니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장면을 시나리오보다 길게 구성했다는 것이다. 실제 시나리오에선 일본인 교사가 십시일반 모은 돈을 영달에게 주는 것을 더욱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러나 최인규는 시나리오와 달리 영달이 수원에서 평택으로 떠나는 고난의 여정을 더욱 비중 있게 담아냄으로써 시나리오의 흐름을 조금 틀어놓는다. 일본에 의해 조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조선인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한다는 뉘앙스를 주었기 때문이다. ‘조선인의 문제는 조선인 스스로 해결한다’ , ‘일본인 도움 없이도 조선인은 자립할 수 있다’ , ‘조선인을 돕는 것은 조선인이다’ 등의 함의를 담고 있는 영달의 평택 여정 시퀀스는 지금의 관객들뿐만 아니라 당대의 조선인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이런 복잡미묘한 함의가 조선총독부의 심의 규정을 멋지게 속여낸 점은 두고두고 놀라운 일이다.

29년의 간극, 서로 다른 해답

어렵사리 뭍으로 나와 서울행 기차에 올라탄 선유도 학생들. 학생들이 선유도를 나와 뭍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은 사실 코미디 문법을 따르고 있다. 순진한 섬 학생들이 처음 접하는 신문물을 보며 놀라는 장면이 연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으레 많은 코미디가 범하는 실수 중 하나인 섬 학생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진 않는다. 섬 학생들의 기본자세가 ‘배움’에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서울의 학교와 공동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공동 수업을 진행하기로 한 날 학교 앞에 내렸지만, 예고도 없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학교 맞은편 짧은 처마 밑에서 처량하게 비를 피하고 있는 선유도 학생들. 우산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세찬 비다. 이때 무지개를 상징하듯 다양한 빛깔의 우산을 든 한 무리의 ‘국민학생’들이 나타난다. 바로 오늘 공동수업을 진행할 학교의 학생들이었던 것.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선유도 학생들에게 자진하여 자신의 우산을 내어준다.

당시 배경이 되었던 국민학교는 종로구에 소재한 학교였다고 한다. 당시 종로구는 우리나라 부가 집결된 곳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등장하는 서울 학생들의 옷차림새는 선유도 학생들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경제적 차이는 철학의 차이를 만들고, 철학의 차이는 태도를 규정짓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울과 선유도 학생들 간의 철학은 동일해 보인다. 경제적 차이는 있지만, 서로 배울 것이 있다는 것. 각자 둘씩 짝을 이뤄 서울 학생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에피소드에서도 이들은 서로 간의 격차를 논하지 않는다. 유토피아적인 묘사다. 영화는 지역 격차로 인한 교육 빈곤 문제를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시킴과 동시에 실은 서로 다를 것 없는 존재라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교육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영화 말미 성공적인 공동 수업을 끝낸 두 학교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송별기념회를 열면서 앞으로 선유도 학교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지원하고, 서로의 학교에 방문하는 수업을 정기화하겠다 선언한다. 당시만 해도 도서 지역 학교와 서울의 학교가 자매결연을 맺는 일은 흔했다. 서울이 지니고 있는 여러 물질적 혜택을 지방에도 골고루 나눠주자는 것이다. 이를 보면 감독은 교육주체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닌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 듯하다. 시대적 한계를 감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영화에선 곁가지처럼 취급되는 ‘전차 에피소드’는 오히려 지금 시기에 더욱 주목해서 보아야 할 시퀀스다. 어느 서울 학생의 아버지는 전차 운전사다. 1969년만 해도 전차는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전차를 더는 운전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과 선유도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태우고 전차 드라이빙을 한다. 드라이빙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남기는 말이 인상 깊은데, ‘시대는 변한다. 그 시대를 읽고 변화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라는 내용이다. 영화가 서울 학생들의 시혜를 통한 계몽적인 결말로 끝맺지 않고, 서울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선유도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고 문제해결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수업료>가 개봉한 지 29년이 지난 후 개봉한 <수학여행>은 그 한계가 명확한 작품이다. 두 영화 모두 사회적 병리로 빈곤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모습은 판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도 보인다. <수업료>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수학여행>은 타인의 도움을 통해 수동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시각의 차이에서 기반한다. <수업료>의 감독이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영달에 자신의 시선을 투영했다면, <수학여행>의 감독은 학생들을 계몽시키려는 김선행 선생님에게 시선을 투영한다. 이렇듯 두 영화는 같은 사회적 병리를 지목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는다.

종결은 없다, 과정만이 있을 뿐

<수학여행> 이후 반세기, 우리 교육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빈곤은 여전히 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경제적 차이가 교육의 차이를 만드는 일은 정도의 차는 조금씩 변화해왔지만 여전하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기에도 우리 사회와 교육은 복잡해졌다. 최근 교육을 비판하는 많은 작품이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기보다 개인의 문제에 치중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교육과 빈곤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도 같다. 쉽게 해결할 수도 없고, 단칼에 내리칠 수도 없다. 문제는 집합적인 듯하나 파편적이고, 서로 간의 이해가 맞물려 법과 제도 하물며 도덕의 관점에서도 쉽게 결론 내리기 힘들다. 일제강점기와 같이 절대 악이 없고, 60~70년대와 같이 계몽주의를 지향하지 못하는 지금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고 분석해야 할까?

역사가 오답노트라면 <수업료>와 <수학여행>은 그 생생한 풀이 과정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풀이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풀어내는 현시대 문제점에 대한 해법도 어찌 보면 하나의 과정이다. 이를 완결성 띤 해답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회는 변화하고 이에 따라 문제도 지속해서 변한다. 지금 이 순간 내린 결정이 당장에 유효하더라도 어느 순간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과정 속에 있음을 늘 지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해법이 종결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과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두 편의 오래된 영화를 보고 취할 태도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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