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모래알 같은 우리 반

글. 지영림(서울아주초등학교 교사)

지난 2월 말, 6학년 담임을 맡기로 결정하고 우리 반 학생 명부를 처음 받아봤을 때 주위에서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반보다 개성이 강하고 소위 ‘마이웨이’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는 평가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3월 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에서 “우리 반 아이들은 뭐랄까, 모래알 같아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담임이라는 건 어쩌면 정원사 같은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똑같이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교실에 앉아 있지만, 사실 모두 다른 식물인 것이다. 누구는 햇빛을 자주 보여줘야 하고, 누구는 물을 많이 주면 안 되고, 누구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어야 하고….

이렇게 제각기 다른 아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 학습을 구성했다.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 ‘반가 만들기’ , ‘반 깃발 만들기’ 등부터 소소한 조별과제까지, 함께 해야 하는 활동들을 올 한 해 참 많이도 했다. 조를 짤 때는 무조건 제비뽑기나 사다리 타기 같은 방식으로 짝을 정했다. 1학기에는 아이들이 친한 친구와 같은 조가 하고 싶어 입이 이만큼씩 나왔다. 모둠활동을 할 때마다 볼멘소리가 나왔다. 1학기 말 체육 시간에 배구를 배울 때도 팀플레이가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그런데도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냥 이 아이들은 이렇게 1년을 보내겠구나’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체육부장님이 10월에 있을 ‘스포츠 창의 인성주간’에 대한 안내를 해주셨다. 각 학년에서 교육과정에 맞는 종목을 정해 반 대항 경기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주간인데, 6학년은 당연히 배구로 결정됐다. 대진표가 나오고 연습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꼴찌만 하지 말자며 낄낄거렸다. 1학기 때 자신들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봤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 강팀이라고 평가받던 반과 무승부를 거두자 아이들 마음속에서 무언가 싹이 튼 것 같았다. 특히 소극적이던 아이들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나가서 연습을 하고, 배구 규칙을 잘 아는 아이들에게 코칭을 부탁했다.

일주일 정도 맹훈련을 한 아이들의 실력은 내가 보기에도 급성장해 있었지만, 갑자기 의욕적으로 변한 아이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저러다가 지면 더 크게 상처받는 게 아닐까? “애들아, 적당히 해. 쌤은 너희가 다 지고 와도 괜찮아.” 걱정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안 괜찮아요!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거죠!” 결과는? 놀랍게도 아이들은 남은 모든 경기에서 다 이기고 우승했다. 3월 초 모래알 같던 아이들이 이렇게 하나로 뭉쳐서 학년 우승까지 하게 되다니 본인들도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여전히 모래알 같다. 누가 봐도 하나로 단합하는 반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학년을 시작했을 때 힘들겠다던 걱정 소리는 요즘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색다른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쌤 반은 설명할 때는 시끌시끌하고 제각각 말이 많은데, 막상 활동을 시작하면 진짜 즐겁게 잘해요.” , “모둠활동을 할 때 서로 가르쳐주면서 (선생님한테) 질문도 안 하고 자기들끼리 잘해요.”

우리 반은 11월에 열리는 강동송파 우리 반 운동회에 학교 대표 반으로 참가하게 됐다. 여전히 연습할 때마다 자기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매번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즐거워 보이고, 나도 꽤 즐겁다. 모래알 같은 우리 반이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모래성을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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