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국토순례’, 걸으며 생각하며

글. 김명환(성동글로벌경영고등학교 교감)

단풍이 절정이다. 출근길에 코끝을 스치는 찬 기운과 어디에 눈을 돌려도 감탄을 자아내는 단풍의 자태는 절로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며, 가을 속으로 냉큼 들어와 함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자고 유혹한다. 이 좋은 계절, 우리 학교는 잠시 교실을 벗어나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신을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인 행사를 기획했으니, 바로 국토순례 ‘국토사랑 나라사랑’이 그것이다.

이른 아침 학생 70명과 인솔교사들이 저마다 기대에 찬 표정으로 운동장에 모였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날, 기온도 우리를 위해 맞춘 듯 딱 적절했다.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숨 한번 깊게 들이쉬고 속으로 기분 좋게 말한다. ‘드디어 시작이군. 파이팅!’

팔당댐을 바라보며 걷는 것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한적한 한강변을 따라 상쾌하고 가벼운 걸음을 걷다 보니 다산유적지에 도착. 다산 선생이 남긴 물건 중 특별히 눈길을 끌었던 건 ‘하피첩’이었다. 실학의 거장이며 위대한 학자이고 훌륭한 목민관으로만 알았는데, 자식을 그리며 애틋하게 여기는 아비의 마음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선생이 살던 시대와 평생 학문을 하며 추구했던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정신을 어떻게 하면 교직에서도 실천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은 한적한 들길과 곧게 단장한 자전거도로 옆 도보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약 3시간 동안 10여km를 걸으니 조그마한 간이역이 보인다. 2008년 폐역이 된 능내역이다. 역 주위로 짧은 거리지만 철로가 보존되어 있어서 철길을 걷는 특별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선사했다. 철길을 처음 걸어본다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며 피로도 잊은 듯 사뿐사뿐,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과 천진한 웃음소리에 내 기분도 절로 두둥실 춤춘다.

기찻길이었던 도보로는 물의 정원으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김유정역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여기에서는 잠시 걷기를 멈추고 강촌역까지 레일바이크로 이동한다. 레일바이크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온다. 터널을 통과하자 북한강이 펼쳐지는데, 그 수려한 장관에 우리는 모두 걷기의 피로를 완전히 잊고 가을 자연의 아름다움에 한껏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약 1시간 30분을 즐겁게 달려 강촌역에 도착했다. 순례의 첫날 일정은 이것으로 끝.

숙소에 짐을 내리니 긴장과 감동, 즐거움으로 잊고 있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학생들도 피곤했는지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가 차츰 사라지더니 일시에 사위가 조용해진다. 약간 쌀쌀해진 밤공기가 오히려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밤, 잠시 밖으로 나와 긴 숨을 들이쉬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 하루 약 20km를 걸었다. 도시가 삶의 전부인 학생들에게 이렇게 먼 길 도보 여행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라고 했다. 내가 오늘 하루 길을 걸으며 마음을 두루 살폈듯이 학생들도 저마다 소중한 마음을 살피고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내일은 호명산 등반으로 순례가 이어질 것이다. 오늘과 달리 산길을 오르게 되니 학생들도 나도 더 힘겨울 것 같다. 하지만 또 어떤 가능성을 만나게 될지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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