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교육

다음 100년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

내일의 민주주의를 바꾸는 학교민주시민교육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 확산에 학교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뿌리가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아직 우리 교육현장에는 학교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고, 이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아쉽기만 하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 방향성에 대해 살펴본다.

글. 곽노현((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전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왜 학교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하는가?

노회찬재단 출범 기념 토크쇼에서 누군가가 제2, 제3, 제4의 노회찬을 어떻게 길러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내 생각과 다소 거리가 있는 답변이 나와 뛰어나가 답변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비단 노회찬뿐만이 아니다. 제2, 제3, 제4의 유관순들, 전태일들, 김대중들, 노무현들, 김근태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아직 다른 방법이 없다. 학교교육으로 길러내야 한다. 당연히 학교를 민주시민교육기관으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도 공동선과 공익, 공공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학교에서 교육적 소재로 더 많이 소화되어야 한다.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논쟁수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학생의 자치활동과 학교운영 참여가 대폭 강화되어야 하고, 학급회의에서 학교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토론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학교수업연계 모의선거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청소년의회 기타 청소년참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투표연령과 정당가입연령, 선거운동연령을 16세로 낮춰야 한다. 이처럼 모든 방법을 활용해서 학교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사회현안교육의 확대 필요성과 교육방법론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학부모와 일반시민들은 자칫하면 이념화, 정치화로 치닫기 쉬운 사회현안교육이 교육적, 비당파적으로 진행된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학교 내 사회현안교육 활성화에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건은 정치교육의 정치화와 이념화를 막는 데 필요한 교육학적 원칙이 있는지다. 다행히 있다. 정치교육과 이념교육의 교육학적 일대 전환을 끌어냈다고 평가받는 1976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이 대표적인 보기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정치교육의 교육학적 원칙으로 주입교화금지 원칙, 논쟁성재현 원칙, 학생이해상관성 원칙을 꼽는다. 이것만 있으면 민주시민교육, 특히 사회현안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된다.

다음 100년을 여는 지금 필요한 것

교사들이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공동선과 공익, 정치 세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남달라야 한다. 지금처럼 투표권을 제외한 모든 정치기본권을 박탈당한 정치적 한정치산자의 신분으로는 민주시민교육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교사정치기본권 박탈은 정치적 중립성의 이름으로 합리화됐다. 만약 위에서 본 것처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학교수업에서 보이텔스바흐 원칙 준수로 확보된다면 교사의 정당가입과 선거운동, 출마와 집단의사표시를 금지하는 현행법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교사의 정치인권을 침해하고 정당민주주의 국가에 맞지 않는 반헌법적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은 공동선과 공익, 공공재에 관한 학습과 토론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지식교육과 덕성교육, 역량교육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민주시민교육의 세 구성요소다. 지금까지 학교민주시민교육은 대체로 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지식교육에 한정됐지만, 바람직한 민주시민교육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공동선과 공익, 공공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정치투쟁과 사회갈등에 눈뜨게 한다. 공동선과 공익의 촉진요소를 강화하고 장애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에 눈뜨게 한다. 불의의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동료시민들과 협력할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자연스레 연대협력을 확장하는 데 필요수적인 전략 수립과 역량 강화에 골몰하게 만든다.

공동선과 공익을 위해 헌신하며 연대혁렵 범위를 확대하는 게 리더십의 본령이므로 민주시민교육은 저절로 리더십교육을 겸한다. 학교현장에서는 공동선과 공익에 대한 강조 없이 인성교육의 하나로 리더십교육이 실시되는 경우가 많다. 인성교육형 리더십교육은 자칫 공적 맥락이나 사명 없이 사적 권력욕을 부추기는 짝퉁 리더십교육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 한마디로 민주시민교육은 훌륭한 리더십교육이자 문제해결역량교육이다.

공동성과 공익의 결핍과 취약성을 치유하며 공동체를 반듯하게 세워나가는 문제해결과정은 그 자체로 공동의 개방성과 유연성, 창의성을 요구하는 집단지성과 집단실천의 시험과정이다. ‘지금 여기 우리를’ 만들어낸 특수성을 끊임없이 살피며 창의성과 혁신성을 발휘해야만 더 나은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 분명한 점은 토론과 논쟁방식으로 진행되는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면 창의성, 소통과 협업역량, 집단문제해결역량이 저절로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21세기 핵심역량을 갖추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인 셈이다. 그렇기에 학교교육을 통째로 민주시민교육으로 대전환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오늘날에는 눈부신 과학기술과 생산성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줄고 부와 소득은 양극화되는 강한 디스토피아 경향이 표출된다. 앞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한 전자투표 활성화와 SNS토론 활성화로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토론과 결정 영역이 대폭 늘어나고 시민들이 공적인 영역과 쟁점에 더 많이 노출될 전망이다. 디스토피아를 막고 직접민주주의를 준비하도록 필요한 시민역량을 갖추는 것은 21세기 학교민주시민교육의 고유하고도 필수불가결한 몫이다.

사회교과만의 일이 아니다. 전 교육과정, 전 교과목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모든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육적 내용을 강화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시대정신과 사회의식, 시대현안이 녹아 있는 음악작품이나 미술작품 등 예술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다. 온 교과목에서 모든 형태의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는 12년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시나브로 누적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마침 올해는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지난 100년을 마감하고 다른 100년을 여는 특별한 해다. 새로운 다짐이 필요하다. 새로운 100년을 여는 새 마음가짐과 다짐이 각 분야와 각계각층에서 봇물 터지듯 선언되면 좋겠다. 특히 백년대계를 다루는 교육계가 앞장서야 한다.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학교교육의 사명은 더는 수사학이 아니라 학교현장의 현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다른 100년의 춤추는 민주주의를 준비하는 최상의 국민적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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