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탐방

빈자리를 채우는 따뜻한 동행

신명중학교의 전환기 수업과 학생자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에는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던 그동안의 무관심을 반성하고, 그 옆에 함께 앉겠다는 의미다. 신명중학교 학생들이 이 빈자리에 앉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빈자리를 채우는 따뜻한 동행은 전환기 수업과 학생자치를 통해 실천할 수 있었다.

글. 오지연 / 사진. 이승준

큰 울림을 남긴 전환기 수업

기말고사를 마치고 찾아오는 전환기는 자칫 의미 없는 시간이 되기 십상이다. 지나온 학교생활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모든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잃어버린 의욕을 쉽게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웬만큼 흥미로운 교육 콘텐츠가 아니고서는 이 시기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명중학교(교장 우호병)는 전환기 수업과 학생자치가 하모니를 이루며 뜻깊고 알찬 전환기를 만들어냈다.

신명중 오광석 선생님은 전환기를 맞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상과 아픔을 담은 내용의 수업을 기획했다. ‘위안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나 용어의 유래, 그 의미 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교사의 책임의식이었다.

“역사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이해입니다. ‘위안부’ 문제가 그 목적에 부합하는 역사적 콘텐츠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고령이 되신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뒤에도 ‘위안부’ 문제가 묻히지 않도록 누군가는 잊지 않고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학생들이어야 하는 거죠.”

평소 접했던 일반적인 역사 수업과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전환기라는 시기의 특성상 당장 학생들이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환기 수업을 통해 접한 ‘위안부’ 문제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은 학생들의 가슴 속에 분명하게 각인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울림은 점차 커져갔다.

모두가 한마음이 된 ‘동행’

신명중의 축제는 12월 말, 기말고사 이후에 열린다. 동아리 활동을 모두 마친 뒤에 축제가 열려야 한 해 동안의 성과물을 온전히 발표할 수 있고, 학생들 역시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축제를 축제답게 즐길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그래서 전환기 수업이 이루어질 당시 신명중은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학생회에서는 학교 내 매점이 없어 평소 학생들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음식 부스를 축제 동안 운영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수익금을 어디에 써야 할지는 고민거리로 남았다. 그때 송숙영 선생님은 학생회장인 김재영 학생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때마침 마을에서 추진 중인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동참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시민사회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활발히 거론되는데, 정작 사회의 뿌리가 되는 학교에서는 움직임이 별로 없어 아쉬웠어요. 교문에서 모금 활동 정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뜻 축제 수익금을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기부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학생회에서는 수익금 전액을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금에 기부하기로 결정하고 축제 주간 중 이틀 동안 음식 부스를 운영했다. 학생,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까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그 취지에 깊이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학생회에서는 손수 핫초코와 팝콘, 솜사탕을 만들었고, 학부모들은 재료비도 받지 않고 떡볶이와 어묵을 만들었다. 학생들 역시 앞다퉈 부스를 찾았다. 그동안 학교에서 즐기지 못했던 군것질을 마음껏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뜻깊은 일에 자신도 동참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준비한 이틀 치 음식이 첫날 모두 동날 정도로 부스는 성황을 이뤘고, 수익금은 백만 원을 훌쩍 넘겼다.

“부스에서 사용될 음식 교환 쿠폰을 제작한 학생에게 쿠폰을 만드느라 고생했으니 그중 몇 개는 네가 사용해도 좋다고 했는데, 의미 있게 쓰이는 수익금인 만큼 자기도 직접 돈을 내고 사 먹겠다고 하더라고요. 전환기 수업과 축제가 결합되면서 음식을 준비한 학생회, 그 음식을 사 먹은 학생 모두가 실천을 통해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기회가 됐어요.”

신명중 학생들은 의미 없이 지나가버릴 수도 있는 전환기를 알차게 보내며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새해를 가슴 따뜻하게 맞이했다. 이제 곧 마을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다. 학생들은 매일 학교를 오가면서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자신이 어떤 일을 했고, 그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새길 것이다. 신명중의 전환기 수업과 학생자치는 학생들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실천하는 기회가 됐다. 이러한 기회, 그리고 학생들이 있어 평화의 소녀상의 빈자리는 앞으로도 더욱더 따뜻하게 채워질 것이다.

학생회장 3학년 김재영 학생

김재영 학생에게 2018년은 잊지 못할 해로 남았다. 한 해 동안 학생회장을 맡아 활동했던 것에 더해 연말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김재영 학생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익금을 기부할 수 있었던 건 모든 학교 구성원의 참여 덕분이라고 말한다.

“축제 때 학생회에서 운영한 부스의 수익금이 적더라도 꼭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금에 기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학생회 임원들도 적극적으로 찬성했어요. 수익금이 생각보다 많이 모여서 저도 정말 놀랐어요. 특히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평화의 소녀상은 전환기 수업을 통해 김재영 학생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있지만, 모두 함께 건립에 직접 참여했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서 마을에 건립될 평화의 소녀상을 누구보다 기대하며 기다린다.

“시간을 내서 축제에 참여해주셨던 학부모님들께 특히 감사드리고 싶어요. 사실 학생회에서 만든 음식보다 학부모님들이 만든 음식이 수익금이 더 많았거든요. 마을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직접 보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더 많은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러 학교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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