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드

1919년 3월 1일 그날의 뜨거운 함성 속으로

3·1 운동 100주년 맞이 역사 투어

매년 매해가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2019년은 더욱 뜻깊다.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던 3·1 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 곳곳에 3·1 운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그날의 뜨거운 함성을 찾아 떠나보자.

글. 신병철 / 그림. 이철민

서울 거리를 뒤흔든 3·1 운동의 함성을 찾아 나서다

1. 학생단 운동의 중심지, 중앙 YMCA 회관

중앙 YMCA 회관은 민족운동의 본거지로써 3·1 운동을 준비했던 곳이다. 3·1 운동 당시 학생 YMCA가 중심이 된 학생단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각종 민족운동 집회가 개최됐다. 1919년 1월 27일 중앙 YMCA 간사 박희도가 소집한 대관원 모임에서 서울 시내 전문학교 학생 대표들 사이에 독립운동 추진에 관한 의견교환이 있고 난 뒤, 학생단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됐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 69

2.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곳, 중앙고등학교

드라마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 중앙고등학교는 3·1 운동 유적지이기도 하다. 1919년 1월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 송진우, 교사 현상윤은 일본에서 유학한 송계백에게서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건네받는다. 송계백은 현상윤 선생에게 사각모에 감춘 초안을 보여줬고, 독립운동가들은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에 모여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다.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164

3. 3·1 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의 거점, 승동교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인 승동교회는 3·1 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1919년 2월, 교회 1층 밀실에서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을 중심으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 명이 모여 3·1 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모의했다. 교회의 위치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할 탑골공원에 인접해 있어 거사 진행을 돕는 데 쉬웠기 때문에 2월 28일 밤에는 1500장의 독립선언문을 경성 각처로 배포했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7-1

4.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곳, 태화관

태화관은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베푼 곳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해외에 있거나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이어서 참석하지 못한 4명을 제외한 29명이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바로 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민족대표들은 집주인에게 경찰에 알리도록 하고, 얼마 후 들이닥친 일본 경찰에 의연하게 연행됐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5길 29

5. 민족운동의 진앙지, 천도교 중앙대교당

서울 시내 3대 건물로 꼽혔던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3·1 운동을 전후하여 지어졌다.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기 위해 대교당 건축이란 명분으로 공사를 진행했고, 1919년 천교도가 3·1 운동의 중심단체로 활동하면서 건축비를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했다. 소년, 청년, 여성을 위한 각종 운동의 거점이었으며, 특히 중앙대교당 건물 앞은 3·1 운동을 위해 천도교 대표 등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하고 배부했던 곳이다.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6. 독립운동 테마 역사, 안국역

3호선 안국역에는 다양한 독립운동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다.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100초 동안에 만날 수 있는 ‘100년 기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대문을 표현한 ‘100년 하늘문’, 3. 1운동과 민족사의 흐름을 강물로 구성한 ‘100년 강물’, 우리 헌법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100년 헌법’이 마련되어 있으며, 지하 4층 승강장에는 독립운동가의 업적과 어록을 기록한 ‘100년 승강장’을 조성했다.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62

7. 불교계 독립운동의 거점, 유심사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던 유심사는 3·1 운동을 준비했던 유서 깊은 장소다. 특히 3·1 운동을 위해 천도교와 기독교 사이의 독립운동 일원화가 성사되자, 최린이 이곳으로 한용운을 찾아와 불교계의 참여를 허락받았다. 한편, 2월 28일 밤 한용운은 불교학교인 중앙학림의 학생들을 유심사로 불러 모아 독립선언서의 작성 경위와 3·1 운동의 의미를 설명한 뒤 각처에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92-3

8. 거사를 최종 점검했던 손병희 집터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3인은 3·1 운동 거사 전날인 1919년 2월 28일 서로 지면을 익히고 다음 날 독립선언식 절차를 최종 점검하기 위해 가회동에 위치한 의암 손병희의 집에 모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식 장소인 탑골공원에 학생들이 집합하기로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급히 선언식 장소를 태화관으로 변경했다.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39

9.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한 보성사 터

3·1 운동 준비가 한창이던 1919년 2월, 독립선언서가 천도교 계통의 인쇄소 보성사로 넘겨진 뒤 27일 극비리에 독립선언서가 성공적으로 인쇄됐다. 보성사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철도를 통해 각지로 전달됐고, 마침내 3월 1일 이른 아침부터 집집마다 독립선언서가 배달됐다. 보성사는 일제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이름을 앞세워 감시를 피해 인쇄소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1. 학생단 운동의 중심지, 중앙 YMCA 회관
2.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곳, 중앙고등학교
3. 3·1 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의 거점, 승동교회
4.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곳, 태화관
5. 민족운동의 진앙지, 천도교 중앙대교당
6. 독립운동 테마 역사, 안국역
7. 불교계 독립운동의 거점, 유심사
8. 거사를 최종 점검했던 손병희 집터
9.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한 보성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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