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민주시민교육의 꽃 ‘토론’과 ‘질문’

유동걸, <토론의 전사 1~3>과 <질문이 있는 교실>

왜 아이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가.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토론문화, 토론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론문화, 토론교육의 꽃은 무엇인가? 바로 질문이다. 지식을 받아먹는 교육이 아니라 ‘왜’라고 물으면서 기존 세상에 물음을 던지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글 · 이정혜(동산초등학교 학부모)

무엇이 새로운가?

얼마 전 <토론의 전사 1, 2>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평소 공적인 자리에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터라, ‘토론’도 무서운데 거기에 ‘전사’라니! 뜻밖에도 책의 문체나 내용은 달콤살벌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전사’는 ‘싸움꾼(戰士)’만이 아니라 ‘전도사(傳士)’이자 ‘스승(全師)’ 등 다양한 함의를 품고 있다. 또 이기기 위한 서양식 디베이트(debate)와는 다른 소통, 화합, 포용, 비전을 추구하는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롭고도 다양한 토론의 철학과 모형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시대의 코드는 소통’이라는 1장에서 이 책 전체의 의미를 말해준다. 21세기의 시대적 화두는 소통이 아닌가! 정치, 교육, 가정, 사회 어디서나 소통의 부재와 이견의 갈등으로 사회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 다름과 차이,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다. 민주적이라는 말은 그 시간과 공간에 참여한 주체들이 누구나 소외됨 없이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말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 거짓 언어로 사람을 속이고 차별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기 언어의 주인이 되어 상대의 이견을 경청하면서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고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판단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마음가짐이 승패와 우열의 체제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고 모두를 위한 마음을 바탕으로 이성과 논리의 힘을 발휘해서 합리적인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토론이라고 하면 일단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라는 우리의 편견을 <토론의 전사>는 여지없이 깨뜨린다. 토론의 본질과 개념은 부정할 수 없는 ‘논리(論)의 싸움(討)’이지만, 토론의 목표는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잘 지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숙해지는 길이라고. 그 길이 바로 나라는 주체를 잃지 않으면서 우리라는 관계의 그물망을 완성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싹이라고 말한다.

질문과 사랑의 관계

어느 자리에선가 유동걸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이 강조하는 토론의 핵심 가치는 셋이었다. 소통, 민주주의, 질문. 바로 이 세 가지 목표달성을 위해 본인은 토론교육에 매진한다는 말이었다. 소통과 민주주의는 실과 바늘의 관계다. 주체와 관계, 참여와 공동체의 의미를 생각하면 결국 민주주의란 누구나 주체적으로 참여해서 공동체적인 의사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그런데 ‘질문’이라니! 이건 왜 중요하지? 그 답을 저자의 다른 책 <질문이 있는 교실>에서 얻었다.

이 책의 부제는 ‘자유인을 키워내는 사랑의 교실’이다. 자유인은 누구인가? 바로 민주시민이다. 민주시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교사나 지식적으로 좀 앞선 친구의 의견에도 반박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민주시민이다. 그 민주시민성에 사랑이 함께 커가는 교실이라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저자는 질문이야말로 그 자유와 사랑을 키우는 교실로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한다.

질문은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상대를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로 바라보면 진정한 질문과 답이 나온다. 책에 소개된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와 한상궁의 대화 또한 질문과 사랑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한상궁이 장금이에게 물을 떠 오라고 하자 장금이는 그냥 물을 떠다 주지만, 한상궁은 이 물이 아니라고 하며 다시 떠 오라고 한다. 또 물을 떠다 주고 퇴짜맞기를 수차례 한 후 장금이는 드디어 한상궁에게 질문한다.

“어찌하여 물을 자꾸 떠 오라고 하십니까?” /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느니라. 어찌하여 흙비를 끓였더냐?” / “어머니께서 그리 하는 것을 보았기에” / “어머니께서는 왜 그리 하셨느냐?” / “제가 어디 아플까 염려하시어···. 아!”

이때 장금이가 ‘아!’ 하고 깨달음의 감탄사를 내뱉은 건 한상궁이 뭔가를 알려줘서가 아니라 한상궁의 질문 때문이다. 그러고서 장금이는 한상궁의 몸 상태를 이것저것 묻고는 드디어 소금을 약간 넣은 따뜻한 물을 한 잔 떠 온다.

절반 이상의 성인들이 <대장금>을 봤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며 이 부분을 질문과 사랑으로 연결해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질문은 사랑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킹스 스피치>로는 질문이 치유되는 과정을, 고3 수업 시간에 드라마 <미생>을 과감히 적용해본 사례에서는 질문이 자유와 연결되는 경험을,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로 질문이 합리적인 의심임을 펼쳐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400쪽이 넘는 분량임에도 이 책을 왜 페이지 터너라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출발점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믿고 구명조끼를 입고도 구조 헬기 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위안했던 세월호 속 아이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때부터 ‘가만히 있으라’는 이 시대를 역행하는 말이 됐고, 교실에서도 사회 곳곳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 땅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이 질문해야 한다. 묻지 않고 지나가니 관행이라는 모호한 말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 한다. 질문이라는 ‘메스’로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만 치유되고 바뀐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저절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연습하고 성취 경험이 쌓여야 가능하다. 아직 <질문이 있는 교실>을 읽어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 책에서 질문이 가지는 힘과 매력을 충분히 느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 힘과 매력을 느끼고 나면 나와 만나는 아이들과도 그 매력을 나누고 싶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직도 먼 대한민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 2019년을 맞으며 다시 <토론의 전사 1~3>과 <질문이 있는 교실>을 펴봐야겠다. 이미 많은 부분에 줄이 그어져 있지만, 다시 새로운 부분에 줄을 그어가며 읽게 될 듯하다. 토론과 질문은 연습하고 준비해야 그 안테나가 늘 벼려져 있을 수 있다. 언젠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기회를 따로 줬음에도 아무도 질문하지 못해 중국 기자가 그 기회를 가져간 적이 있다. 또 그런 기회가 온다면 이번엔 좀 다를까?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과 2016 겨울 촛불의 함성, 2018년 미투와 불편한 용기를 지나며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이 세상이 토론과 질문을 통해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사랑의 교실’이 되기를.

토론의 전사 1~3

유동걸 저 | 한결하늘 펴냄

대립 갈등과 논쟁 중심의 토론교육 풍토를 상생과 조화의 토론으로 이끄는 길을 제시한다.

질문이 있는 교실

유동걸 저 | 한결하늘 펴냄

문제의식을 잃어가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질문이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