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시대는 이미 우리를 동시대인으로 정의했다

한국 영화 <우리들>

영화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선이의 우정과 다툼 그리고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초등학생의 모습을 어른이 아닌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작품은 그들의 삶 또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글. 이중기 / 사진제공. (주)엣나인필름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

지아는 선이의 단 하나밖에 없는 친구다. 여름방학 직전에 전학 온 지아에게 낯선 동네와 친구 하나 없는 학교에서 선이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만 해도 두루두루 친구가 많았던 선이도 4학년 들어서는 학교생활에 외로움을 많이 느끼던 중이라 지아와의 만남이 더욱 반갑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평소 선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보라가 다니는 학원에 지아가 등록하면서 조금씩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초등학생이 주연인 작품은 많다. 그러나 초등학생의 시선을 담아낸 작품은 거의 없다. 성인이 무릎을 굽혀 초등학생의 시선을 따라 한들 결국 어른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재단해내기 때문일 테다. 영화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의 고민 또한 여기에 맞닿아 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 있는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선이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우리들>에는 대본이 없다. 대본은 성인 배우들에게만 주어졌고, 아역 배우들에게는 상황설명과 최소한의 대사, 동선만이 주어졌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어른의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대본이 아닌 오롯이 자신들의 체화된 삶 속에서 꺼내온 것이다. 덕택에 <우리들>의 관람은 마치 관객들에게 자신의 유년 시절을 복기해보는 것과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 자신이 이입하는 대상이 선이든, 지아든, 보라든 누구든 간에 말이다.

윤가은 감독은 제작의 변을 통해 어린 시절의 ‘우리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중요했던 문제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아이들의 문제를 등한시한다. 어른의 복잡다단한 문제에 비하면 아이들의 문제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양 소홀해하기 일쑤다. 아이가 전하는 징조를 무시하는 재난영화의 흔한 클리셰처럼, 아이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한 불신도 이에 한몫한다.

실제로 작중에 나오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선량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아이들이 지닌 문제는 제대로 보지 않거나 설령 보았다 하더라도 문제도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이러한 어른들의 부재는 오롯이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함도 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문제에 어른들은 관심이 없음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동시대인으로 자각하기

선이가 겪은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지아는 새 학교에서만큼은 친구 사귀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우연히 선이와 친구가 됐지만, 문제는 선이도 친구가 많지 않았다는 것.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이 보라와 친하게 된 지아는 선이를 의도적으로 밀어내려 한다.

갈등과 다툼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해소하는 건 선이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부터다. 선이는 동생 윤이를 다그치다 깨달음을 얻는다. 친구 연우에게 만날 얻어맞으면서도 같이 노는 윤이를 나무라는 선이. 그러나 윤이는 오히려 누나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때리고 또 때리면 그럼 언제 놀아? 난 그냥 놀고 싶은데?”라고 말하는 윤이의 말에 선이는 큰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걸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스스로 되물었을 선이는 다시 지아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게 된다.

먼저 한발 다가가고, 언제나 솔직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뉘우치는 모습들은 그 역할을 어른에게 대입해봐도 충분히 필요로 하는 덕목들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으레 생채기가 나기 마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은 쉽게 깨우치기 어려울뿐더러 실천은 더더욱 어렵다. 이와 같은 고민은 초등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다. 바로 나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싼 많은 이가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학생들을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동시대인’으로의 자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학생들과 같은 시대를 영유하고 있다. 다만 태어난 시기가 각기 달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동시대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스피커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피커는 기성세대에 편중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변화를 만들 차례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윤가은 감독은 30대가 되고 나서야 감독으로 데뷔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 이미 ‘우리들’은 아이들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꼭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체제가 빠르게 변한다. 영화는 이미 구체제다. TV의 아성을 뛰어넘은 ‘유튜브’는 이 시대의 수많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스피커를 만들어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만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이다.

기술의 발전은 누구나 스피커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수십 년간의 시간을 통과하여 기성세대가 되어야 하는 의례는 앞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그리고 커진 스피커만큼 그들의 문제에 주목하는 어른들도 많아질 것이다.

시대는 우리보다 먼저 학생과 성인을 ‘우리들’ 즉, ‘동시대인’으로 정의했다. 그다음부터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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