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정문맞이를 희망맞이로

글. 이현준(경기고등학교 교감)

아침 7시, 어두컴컴한 학교 정문 기둥은 축축한 겨울 냉기를 머금고 서 있다. 이른 아침 학교 캠퍼스를 걷는 기분은 오늘도 새로운 학교가 시작되리라는 기대감에서 출발한다. 교무실에 도착해 신문을 잠시 보다가 7시 20분이 되면 다시 정문으로 향한다. 학생들이 올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교무실에서 정문까지는 5분 정도 걸리는 경사진 길이지만, 내리막길이라 아침에 올라올 때보다는 훨씬 힘도 덜 들고 마음도 가볍다. 이따금씩 일찍 등교하는 학생과 큰소리로 아침인사를 할 수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나의 인사에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좋다. 그냥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정문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지킴이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을 뵐 수 있다. 아침인사와 어제 있었던 작은 일들을 잠시 주고받고 나면 학생들이 물밀 듯이 등교한다.

학생들은 아침이면 졸린 표정, 힘찬 표정, 음악을 듣고 있어 즐거운 표정 등 다양하다. 속마음을 전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 학생들을 즐겁게 맞이한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어서인지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너 이름이 뭐였더라” 하고 자꾸만 묻는다. 그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변명하면서 또 묻는다. 그렇게 기억나는 이름으로 학생을 불러 인사한다. “민성아, 안녕.” 그러면 아이는 ‘아니, 내 이름을 알고 계시네’라는 표정을 지으며 매우 즐거워한다. 좀 더 친해지면 팔 벌려 포옹해준다. 익숙해지면 팔만 벌려도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안긴다. 그러면 차가운 공기에 얼어 있던 얼굴이 맞닿기도 하는데, 그때 나는 속닥거린다.

“민서야, 춥지? 오늘도 힘찬 하루 되렴” / “감사합니다. 근데 선생님 추워서 어떡해요.” / “아냐, 괜찮아.”

1300명이나 되는 모든 학생에게 이런 정문맞이를 하고픈데 안타깝게도 물밀 듯이 밀려올 때는 감히 도전하기가 어렵다. 그때는 그냥 눈인사나 “안녕”이라고만 외친다. 물론 이것은 아침 등교시간의 희망사항이다.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학생, 슬리퍼를 신은 학생 등 복장이 불량한 학생도 간혹 눈에 띈다. 그러면 불편할 수 있지만, 난 그 학생들을 불러 이야기한다.

“어허, 어느 학교 학생인가?” / “경기고인데요.” / “이렇게 트레이닝복을 입고 오면 내가 경기고 학생인지 어찌 알겠누? 우리 학교에 다른 학생이 등교하면 어떻게 왔는지 묻고 그 이유를 확인한 후에 출입시키는 것이 좋겠지?” / “네.” / “그런데 네가 이렇게 오면 우리 학교 학생이 맞는지 내가 잘 모르지 않겠니? 경기고는 명문이고, 너희 선배님들이 후배들 잘 지도해주십사 하고 매일 부탁하는데, 학교 규정에 맞게 등교하면 어떨까?” / “네, 내일부터는 잘하겠습니다.” / “그래, 선생님은 널 믿을 테니 내일부터는 잘하겠다고 약속하자. 알겠지?” / “네, 알겠습니다.”

아침의 기분은 하루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친 우리 아이들, 하루종일 힘들 텐데 적어도 아침만큼은 어떤 잘못을 했어도 용서하고 서로 믿는다는 신뢰감을 주고 싶다. 물론 그런 믿음은 교사,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얼굴이 밝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두운 아이들을 보면 더더욱 인사하고 싶다. 그리고 믿어주고 싶다. ‘학생들이 먼 훗날 우리를 책임지지 않을까’라는 미안함에 난 오늘도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내 힘이 학생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정문맞이를 마치고 교무실로 올라가는 길은 다리는 좀 힘들지만 마음은 가볍다. 학생들이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학교는 이렇게 오늘도 또 내일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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