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어떻게 연극은 동아줄이 되었는가?

글. 오은정(서울영화초등학교 교사)

어쩌면 불구덩이 같았을 격동시대를 얼음심장으로 살던 소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걷는다. 어제의 흔적인지 최루탄 매운내가 시종 코를 간질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결들은 생각나지 않는 혼잡함으로 인해 머리까지 얼얼하게 매웠다. 소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삶에 대한 의지가 약했다. 그 이유는 지금도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에도 모호했다. 소녀(나)는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 여기 있어요!”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한 장의 포스터. 인근 대학 연극부에서 공연하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의 포스터였다. 아마도 대학생이 대부분이었을 관객들 틈에서 ‘죽음’을 관람했던 여고생은 오랜 시간 짓누르고 있던 죽음을 ‘드라마틱하게’ 걷어냈다. 연극이 가진 힘으로 내 죽음이 ‘사춘기의 겉멋’임을,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개인적이지 않음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연극은 그렇게 나를 미망속에서 탈출시켰고 내 인생의 동아줄이 됐다. 직업연극인은 아니지만 ‘연극인’의 정체성으로 교사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최근 연극은 교육과정 및 교육 트렌드로 매우 각광받고 있다. 그럼에도 연극의 참맛을 알기는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연극의 현장성으로 인해 직접 보는 것만 해도 품이 많이 들거니와 더구나 수행해보는 것은 여간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좋은 건 알겠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나요’라는 의견을 많이 제시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답한다. “맞아요. 그런데 어쩌면 그 어색함과 어려움이 연극을 교육대안으로 만들었을지 몰라요.” 연극이 어색한 것은 우리가 고정된 캐릭터로 교사, 학생 역할만 연기하면 됐던 교실을 뒤엎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언덕 혹은 산으로 느껴졌던 교육과 연극 사이의 고개를 넘은 교사들이 교육자로서 거듭나게 됐다고 생생하게 증언한다. 최근의 뚜렷한 물증은 관악·동작지역 초등교사 연극모임 ‘관동탐극’이 점점 찌질(?)해지고 있는 교사가 다시 교육자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 통찰하는 작품 <숨은 그림 찾기>를 작년 가을에 창작, 공연한 것이다.

2월, 학년 말에는 다음 학년도에 어떻게 살 것인지가 결정된다. 한마디로 담임 업무 희망 및 신청, 결정이 진행된다. 진급 학생들에 대한 평판, 교사 개인의 경험과 형편, 여기에 소문과 트라우마 등이 추가되어 2월 말 교사들은 뜨겁다. 요즘에는 교사들의 무기력이 더해져 비교육적인 논의와 의사결정도 비일비재하다. ‘관동탐극’은 그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고자 했다. 한 학기 동안 10명의 초등교사가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면서 창작 극본을 완성했고 공연으로 형상화해냈다. 서로 다른 학교에서 교내 역할과 업무가 막중한 사람들이 짬을 내서 연극에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힘들다는 표현 너머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과정을 생각하니 지금도 감동적이다.

극본 창작과 캐릭터를 연구하다 보니 학교풍경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교사 자신과 학생들이 ‘삶의 의미를 좇는 동반자’라는 것을 마침내 알아냈다. 조명, 분장, 음악 등 여러 요소가 이뤄낸 하모니를 몸과 마음을 다해서 이뤄냈을 때는 창조자의 자부심이 밀려왔다. ‘관동탐극’이 2기를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의 어느 부분도 소외되지 않는 총체적 작업을 위해 영혼을 담금질하게 하는 몰입, 마침내 이뤄낸 ‘극’이 충족시켜주는 의미욕망과 창조욕망. 얼음장 같던 소녀의 마음을 녹였던 그 연극은 오늘날 불쌍한 오누이 같은 교사들에게 동아줄이 되어 해도 달도 되게 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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